'기생충' 감격에 다시 본, 시골도시 '칸'의 대박비밀
2019-06-02 19:03
[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경쟁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칸영화제는 이번이 일흔 두 번째라고 한다.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하지만 인구 수는 독일 수도인 베를린이 350만명, 베니스가 19만명이며, 칸은 7만5000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담한 시골도시나 다름없다. 파리 고속철도가 연결되는 25㎞ 인근 아름다운 해변도시 니스를 포함해 알프마리팀(Alpes-Maritimes) 데파르트망(광역과 기초 중간 정도 지방자치단체) 전체로 확대해도 100만명 남짓이다. 칸은 1년 내내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고 음악공연과 미술전시회 등이 끊이지 않는 등 축제 및 사교, 그리고 관광과 휴양의 매력이 넘치는 도시이다.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예술, 크고 작은 호텔을 다녀가는 관광객과 야외스포츠가 칸의 3대 산업이다. 그래서 서비스업 비중이 전국 평균보다 5% 이상 높다.
프랑스는 대통령제 국가이면서도 레지옹(광역)을 제외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의회에서 간선으로 선출한다. 일종의 내각제 방식이다. 현직 칸 시장은 데이비드 리스나르(50)이며, 2014년 5월 시의회에서 선출되었다. 그의 증조부는 칸 중심부 올드타운에 위치한 포빌(Forville)마켓을 건축한 인물이며, 조부 또한 고급호텔 르솔레 다쥐르를 건립했다. 모친 역시 유명한 댄서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도 나름대로 프로축구선수 겸 댄서로 명성을 날린 적이 있었다. 또한 매년 2차례 니스-칸 및 파리 마라톤 풀코스대회에 참가하며 3시간 이내 완주기록을 여러 차례 세운 열렬 마라토너이다. 이렇듯 4대가 문화예술관광스포츠와 특별히 관계가 깊다. 피로 내려온 DNA를 갖춘 전문가 출신이 펼치는 칸의 문화관광체육행정은 과연 남다르지 않을까? 리스나르는 기대에 부응하며 시장 취임 1년 6개월 뒤 칸이 속한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레지옹 관광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리스나르의 전임은 베르나르 브로찬드(Bernard Brochand)이다. 그는 2001년부터 무려 13년 동안이나 칸 시장을 장기 집권했다. 프랑스 청소년 및 군, 아마추어 축구대표 출신인 그는 1970년대부터 30년 이상 프랑스 최고명문 프로축구팀인 파리생제르맹(PSG)클럽 이사 및 구단 대표로 활동했다. 그 사이 1998년 프랑스월드컵조직위원회 대변인 직을 맡았다. 1984년에는 프랑스 최초로 영화 및 스포츠 유료채널인 Canal+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고, 2000년대 들어와서는 스포츠 중계 등 채널인 라디오프랑스 CEO를 역임했다. 베르나르 브로찬드는 2001년 4월 보궐선거를 통해 프랑스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2017년 5월 하원 최고령(1938년생)으로 5선에 성공했다. 베르나르 브로찬드가 리스나르에게 시장직을 물려준 계기는 SEMEC(팔라 데 페스티벌 공연장) 관리위원장 임명이다. 리스나르는 SEMEC 위원장을 맡아 관리비를 25%나 절약함으로써 전국평균보다 6%가량 열악한 칸 재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밖에도 건축가(장-샤를 안토니·6년), 지역 및 도시재생전문가(안드레 부용·3년) 등 1946년 칸 영화제 개최 이래 총 12명의 시장 가운데 문화관광스포츠 관련 인물 4명이 칸 시장을 맡아오고 있다. 이들의 재임기간도 무려 27년을 상회한다.
한편 비슷한 인구 규모지만 베니스는 현직 시장 루이지 브루냐로(Luigi Brugnaro·58)가 칸과 같은 시기(1946년 이후) 유일한 문화체육인 출신이다. 2015년 6월부터 시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베니스를 근거지로 하고 유럽리그 우승 경험도 있는 프로농구팀 구단주 출신이다. 역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민선 지방자치시대 개막 이후 우후죽순처럼 영화제가 앞다투어 개최되고 있으나 실속이 있는지, 우리나라 영화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된 평가조차 없다.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부산영화제, 부천영화제, 제천영화제를 준비하고 이끌어온 13명 시장 현황을 보면 6명이 직업공무원 출신으로 가장 많다. 다음이 직업정치인 출신으로 5명이다. 나머지는 의사와 변호사가 각각 1명씩이다. 사실상 직업공무원 아니면 직업정치인뿐으로, 문화예술 및 관광스포츠 관련 전문가는 전무하다. 리더가 반드시 전문가일 필요는 없겠으나, 의지만 있다면 광주광역시(문화경제부시장, 옛 정무부시장) 또는 충청남도(문화체육부지사)처럼 유연한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최근 경기도가 조직개편을 통해 노동국 및 공정국 신설 등을 단행하겠다고 입법예고한 바 있다. 조직 명칭에는 곧 리더가 시행할 철학·노선이 담기는 법이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은 열 번 백 번도 축하할 일이지만 거기서 그쳐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영화산업도 한 단계 도약에 나서야 한다. 작지만 강한 도시, 칸의 문화예술스포츠행정을 따라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