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인문학]세탁이 취미인 사람은 왜 없을까
2019-05-29 15:33
'올해의 발명왕'에 뽑힌, 트롬스타일러 발명가 김동원과 실없는 호기심들
2019년 5월27일 김동원 LG전자 연구위원이 '올해의 발명왕'에 뽑혔다. 트롬스타일러를 만든 그 사람이다. 24년 동안 세탁기를 연구했다는 이 분은 약간 뜬금없지만 인상적인, 이런 말을 한다. "요리가 취미인 사람은 있지만, 세탁이 취미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왜 그럴까. 둘 다 가사노동인데 요리는 즐기는 사람이 있는데, 세탁은 왜 즐기는 사람이 없을까. 요리의 결과에도 효용이나 만족이 있고, 세탁의 결과에도 그것이 있다. 요리와 세탁의 즐거움은 왜 다른 것일까. 요리는 다양한 재료와 솜씨와 지식과 노하우와 과정에 따라서 아주 다채로운 결과가 생겨난다. 하지만 빨래는 한 가지의 목표, 의류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상태에 가깝도록 회복해주는 것을 겨냥한다. 요리는 창조에 가깝고, 빨래는 의료행위나 복원기술에 가깝다. 의료를 취미로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셈일까.
요리는 '맛있음'이라는 하나의 이데아로 표상되는 수많은 맛을 목표로 하지만, 빨래는 깨끗함(원상태)이라는 이데아이자 현실인 하나의 목표만을 지닌다. 빨래는 깨끗함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것은 목표에 대한 도달의 정도를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세탁기는 있지만 '요리기'는 인간의 창의에 곁들인 하부 기계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요리사는 있지만 세탁사는 좀 어색하다. 세탁기는 세탁 절차의 즐거움이 아니라 세탁결과의 만족만을 선사하는 편이지만, 요리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들 속에 촘촘히 존재하는 선택들의 즐거움을 준다.
그건 그렇고, 트롬스타일러는 발명하게 된 계기는 흥미롭다. 이런 물건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고민하고 있던 차에, 세탁기 사업부장이었던 조성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출장 갔을 때 캐리어가방 속에 있는 정장이 구겨지잖아? 그럼 난 이렇게 해. 화장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그 옆에 정장을 걸어두는 거지. 자고 나면, 놀랍게도 깨끗이 펴져." 이 팁이 공기 중의 습기로 주름을 펴는 기술이 됐다. 생활의 지혜가, 발명왕의 귀에 들어왔을 때는 인간의 삶을 바꾸는 기계로 바뀐다는 것. 스타일러는 개발에서 출시까지 9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9년간 마음 속에 스팀을 뿌려 여러가지 불가능의 주름들을 서서히 펴왔을 것이다. 이분, 멋지지 않은가.
원래 발명의 날은 5월19일이다. 1441년 세종 때 장영실이 측우기를 발명해 세계최초로 사용했다는 날을 기념한 것이다. 이탈리아 가스텔리의 측우기(1639년)보다 200년 앞섰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