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는 사람 특유의 냄새 있어"… 황금종려상 '기생충' 무슨 내용이기에
2019-05-26 12:20
이상국 논설실장
[빈섬 이상국의 '편집의눈']'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이, 빈부의 벽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영화
이런 일은 처음이다. 한국 영화가 26일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쾌거다. 황금종려상은 칸영화제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에 주는 상으로,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선정했다. 이 영화는 지난 22일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영화관계자들로부터 "모든 요소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번 수상은, 한국 영화의 수준이 글로벌한 무대에서 정점(頂点)에 도달해 있음을 웅변한다. 어떤 영화이기에, 쟁쟁한 경쟁국들의 전문가들로부터 '공감'과 '찬탄'을 이끌어냈을까.
영화의 시놉시스를 간단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반지하에게 거주하는 가난한 가족이 뜻밖의 기회에 부잣집에 얹혀 살게 된다. 제목의 '기생충'은 빈자들의 그 상황을 경멸적으로 풍자한 말이다. 신분을 속이고 그것이 들통나는 위기를 겪게 되고 그런 가운데 인물들이 빚어내는 코믹한 말과 행동들이 폭소를 자아낸다. 이 웃음은 유쾌하거나 건강하지는 않다. 정말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절박하고 위태로운 삶의 연속이다. 봉준호 감독은 비극 속에 숨어있는 희극을 포착해, 콘크리트벽을 뚫고 자라나는 풀꽃과도 같은 삶의 낙천적 생명력을 찍어낸다. 클래식과 트로트풍 음악이 교직되는 것이나 독특한 소품들로 관객을 어이없이 웃기는 페이소스 또한, 봉준호의 계산 위에 있는 것들이다.
프랜차이즈 창업으로 망한 '백수 아버지'로 나온 송강호는 2017년 이 땅의 대왕카스테라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이처럼 영화는 퍼즐처럼 많은 메시지와 사회적 기호들을 숨겨놓고 있다. 특히 계층과 세부적인 계급들이 인간을 어떻게 서로 구획짓고 차별하고 고통을 주는지 언뜻언뜻 드러내는 대사들이 석연찮은 뒷맛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지하철 타는 사람 특유의 냄새가 있어"와 같은, 평소에 의식하지 못했던 차별점들을 환기하는 대목에서 그렇다. 23일 한 신문(경향신문 김경학 기자)과의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선을 침범하는 게 냄새다."
우리는 냄새와 관련한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사람 사이의 '접근'을 의미한다. 실제 현실공간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섞일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이용하는 식당이나 비행기의 좌석도 다르다. 이 공간의 분리가 계급을 유지하는 질서의 핵심이다. 누구나 지하철을 탈 수 있지만, 거의 지하철을 타지 않은 '계급의 사람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이 불가피한 이유로 지하철을 탔을 때, 느끼는 핵심은 자신이 지금껏 맡지 못했던 '불유쾌한 사람냄새'다. 이 밀착을 강요하는 공간에서 냄새들은 계급의 간격과 경계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봉준호가 간결하게 언급한 '선을 침범하는 게 냄새'라는 말은, 영화가 담은 뼈아프고 엄혹한 현실을 반어법적으로 드러낸 한 마디다.
봉감독은 이 영화의 주안점에 대해 이런 말도 한다. "이 영화는 공간에 대한 영화다. 각 개인이 차지하는 면적이 다르다." 공간이 권력이라는 개념은 사회학적인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어 있지만, 영화는 후반부의 체육관대피소 신을 통해 공간의 계급성을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그가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것은 2013년 '설국열차'를 작업하면서였다고 한다. 그때 한 배우가 "연극 연출은 왜 안하느냐?"고 물었고,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었다. 연극은 제한된 공간과 인물 속에서 주제의식을 강렬하게 돋워 확장하는 것이 묘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생충은 집의 공간을 다루고 있고, 또 설국열차의 빈부문제인 앞칸과 꼬리칸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관객을 계도하기 위해 사회적 문제의식을 지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빈부격차를 다루는 까닭은, 거기에 인간 감정이 집약되고 흥미로운 행위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가장 영화적인 스토리의 광맥이 많은 곳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빈부 문제가 주는 공감대와 보편적 정서가 스토리의 힘을 담보하지 않는가. 불안과 공포, 서스펜스와 간절함이 생겨나는 지점이 계급 사이의 투명한 벽에 있다.
이런 게 먹힌 것일까. 외국의 영화관계자들은 영화를 본 뒤 봉감독에게 인사하면서 자기 나라 얘기 같다고 찬사를 보냈다. 홍콩과 영국 출신의 인사는 "완전히 홍콩의 상황이다" "런던으로 세팅을 바꿔 리메이킹해도 좋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보편의 공감을 사는 역설이 된 셈이다. 봉 감독이 "남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을 현미경처럼 파헤친 영화"라고 설명하지만, 그 내밀한 공간은 국경을 초월한 '자기 이야기'들로 변주된 셈이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