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차 브랜드 ‘마세라티’, 105년 역사 돌아보기 (上)
2019-05-22 18:10
대중들에게 각인된 마세라티의 보편적인 이미지다. 흔히들 삼지창이라고 부르는 엠블럼만으로도 남들과 차별되는 부(富)에 대한 상징성을 갖게 된다.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플렉스(과시)의 표본으로도 칭할 만 하다.
이 같은 상징성을 갖기까지 10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지난 1914년 마세라티가(家)의 여섯 형제들에 의해 설립된 이후, 수많은 담금질을 거듭한 끝에 럭셔리 스포츠 세단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다. 소유권 이전 문제에서부터 레이싱대회 활약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마세라티에서 선보인 첫 차는 1926년 자체 기술로 제작한 ‘티포 26’이다. 바로 이 때가 마테라티의 상징인 ‘삼지창’이 탄생한 순간이기도 하다. 여섯 형제 중 유일하게 자동차 전문가가 아니었던 다섯째 마리오는 볼로냐 마조레 광장의 넵투누스(바다의 신 포세이돈)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어 삼지창 엠블럼을 창조했다.
이후 1937년 마세라티 형제는 회사를 오르시 가문에 넘겼고, 본사도 모데나로 옮기게 된다.
경영권 이전 이후 마세라티는 양산차 제작 체제를 구축한다. 이어 1947년 현 ‘그란투리스모’의 전신인 ‘A6 1500’을 선보인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이탈리안 특유의 감성적인 디자인과 성능이 조화를 이룬 차량을 제작하는데 집중했다. 이러한 기조 아래 출시된 ‘3500GT’는 9년간 2000여대 가까이 팔리며 마세라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60년대부터는 8기통 엔진을 탑재한 모델 개발에 전념하게 된다. 이에 대한 결과물로 1963년 4도어 세단인 ‘콰트로포르테’를 시장에 내놨다. 이후 1966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협력을 통해 현 마세라티 이미지에 가장 크게 공헌한 ‘기블리’를 선보이게 된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뛰어난 성능을 갖춘 ‘바이터보’를 출시하며 고객 범위를 넓혔다.
이후 시트로엥, 피아트 등을 거쳐 1997년 피아트의 계열사인 페라리에 소유권이 넘어가게 된다. 이 때부터 마세라티는 공장에 현대식 설비를 갖추고 종전의 각진 디자인에서 부드러운 곡선의 디자인으로 바꾸는 등 본격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오랜 세월 동안 라이벌 관계였던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파트너십을 통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페라리의 V8 엔진을 장착해 최대 380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는 ‘3200GT’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4년에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콘셉트카 알피에리를 선보이며 회사 창립 100주년을 기념했다. 이후 초고성능 슈퍼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르반떼 GTS와 르반떼 트로페오를 잇따라 출시하며 또 다른 브랜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