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열혈사제' 김남길 "필살기는 조금 남겨뒀어요"

2019-05-02 08:20
살인사건 파헤치는 알코올 의존증 다혈증 신부역할
강렬한 연기덕…'비담' 이후 10년 만에 인기 되찾아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석양 지는 것처럼 슬펐다"

비담(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재림이라고 했다. 미실(고현정 분)과 진지왕(임호 분) 사이에서 태어나 비극적 삶을 살았던 그는 등장부터 퇴장까지, 단 한시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불리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청자들에게 회자하고 있는 비담은 배우 김남길(38)의 '인생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리고 10년 뒤 시청자들 앞에 SBS '열혈사제' 김해일 신부가 나타났다. 알코올 의존증 초기에 거친 독설과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그는 시청자들의 마음에 강한 '한 방'을 날렸다. 독특한 성격을 가진 남자주인공의 일갈에 시청자들은 얼얼함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도 강렬하고,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김해일에게서 비담을 보았고, 김남길의 '제2의 전성기'를 느꼈다.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김해일 신부 역을 맡은 배우 김남길[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20일 종영한 SBS 드라마 '열혈사제'(극본 박재범 연출 이명우)는 다혈질 가톨릭 사제와 구담경찰서 대표 형사가 한 살인사건으로 만나 공조 수사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시청률 10.4%(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동일)로 시작해 최근 지상파 드라마로는 드물게 22%로 종영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직 '열혈사제'가 끝난 것 같지가 않아요. 얼떨떨하달까? 배우들끼리 너무 가까워져서 '자, 이제 끝이야'라고 하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떨어져 지내니 그리운 감정이 커요. 고생을 많이 해서 끝나면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 보고 싶고 그래요."

폭발적인 인기며 높은 시청률까지. 그저 웃을 일밖에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마주한 김남길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기쁨과 아쉬움이 뒤섞인 그야말로 '묘한' 표정에 "마냥 좋지 않냐"고 거들자, "작품 자체는 밝으나 끝나고 나니 공허한 마음이 크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쾌하고 밝은 작품이고 출연진들이 함께 (감정을) 나눠왔잖아요. 그러다 보니 촬영 종료 후에 공허하다고 할까, 허무한 점도 있고요. 물론 너무 좋죠. 드라마가 잘 되고 화제성도 있어서 조연 배우들도 유명세를 타고 그런 걸 보면서 뿌듯한 마음도 들고, 함께 포상 휴가도 가고. 그런데 한편으로 석양이 지는 걸 보면서 슬픈 기분이 드는 느낌이라고 할까? 다들 좋아하는데 혼자 적적해하는 거 같아서. 하하하."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김해일 신부 역을 맡은 배우 김남길[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남길에게 남은 흔적은 분명 '애정'이었다. 탄탄한 작품과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만나 작품의 퀄리티를 높여보고자 했던 욕심은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휘했고, 단단한 팀워크로 이어졌다.

"솔직한 말로 케이블 TV나 종편의 경우는 젊은 시청자들에게 호감도, 선호도가 분명 있어요. 지상파는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낮은 편이라서 그것을 어떻게 올릴지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함께 고민하고 연기했죠. 작품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애정이 있어서 더욱 똘똘 뭉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지상파에 대한 호감도를 끌어올려 보자'는 해법은 곧 '작품을 잘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됐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상파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종편·케이블 채널보다 시청률이나 화제성도 턱없이 낮았다. SBS 역시 '열혈사제'를 금토 드라마로 파격 편성하고 공격적으로 홍보하는 등, '판'을 바꾸려 애썼다.

"화제성을 잡는 게 중요했어요. 기존 '정글의 법칙' 방송 시간대를 우리가 꿰찬 건데 이러다 시청률이 안 나오면 독박 쓰는 거 아닌가? 불안한 마음도 컸죠. 다행히 '정글의 법칙'도 '열혈사제'도 시청률이 잘 나와서 다행이지만요."

주연배우인 김남길은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며 뒤척일 만큼"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과 타이틀롤이라는 부담감이 만들어낸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장에서는 "잘할 수 있다"며 분위기를 북돋으려고 애를 쓰고, 일부러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치곤 했다. 그것마저도 '주연배우'가 해야 할 몫인 셈이었다.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김해일 신부 역을 맡은 배우 김남길[사진=SBS 제공]


"그게 프로라고 생각해요. 저는 선배들에게 그렇게 배웠어요. '주연배우'고 현장을 리드해야 하는 입장인데 정말 고마운 건, 배우들이 저를 잘 따라와 줬다는 점이에요. 배우들 모임도 많이 가줬고 누구 하나도 '열정'이라는 이름의 아집으로 드라마의 방향을 해치지 않았어요. 반응이 좋으면 들뜰 수밖에 없는데도 절대 튀어 나가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정말 고마울 뿐이죠."

배우들의 '마음'은 작품의 완성도로 그리고 시청자들의 '만족도'로 이어졌다. '열혈사제'는 시청률 10%대로 시작해 22%로 종영했고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배우들에게 '인생 캐릭터'를 선물했다. 특히 주인공인 김남길은 시청자들을 '해일 앓이'에 빠트리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느꼈던 기시감 아닌가. 김남길 역시 자연스레 "'선덕여왕' 비담과 '열혈사제' 김해일을 두고 많이 비교하더라"며 자연스레 두 캐릭터를 언급하기도 했다.

"화제성이나 캐릭터의 기본틀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한 인물이 흑화하고 정체성에 따라 발전해나가는 식이잖아요? 그런데 넓게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캐릭터가 그런 방식,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맡은 캐릭터 중 가장 화제성 있는 작품, 캐릭터가 비담과 김해일이기 때문에 비교 선상에 선 게 아닐까요?"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김해일 신부 역을 맡은 배우 김남길[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럼에도 김남길은 '인생 캐릭터'라는 수식어에 관해서는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계 없이 계속해서 확장하고자 노력하는 그는 "앞으로 남은 많은 것들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나갈 예정이다.

"비담과 김해일 사이에 저는 꾸준히, 끊임없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어요. 흥행하지 못해서, 화제성이 없어서 사람들이 모를 수 있겠지만요. 저는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여러 시도를 할 테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인생 캐릭터'라고 하면 필살기를 다 쓴 것처럼 느껴져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잖아요. 아직 보여드릴 게 너무 많으니까. '인생 캐릭터'는 조금 더 남겨두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