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최혜진 시대…더 성숙해진 '골프천재'

2019-04-30 00:01
KLPGA 투어 데뷔 2년 만에 생애 첫 메이저 왕관
KLPGA 챔피언십 연장서 환상 벙커샷으로 짜릿한 우승
마인드컨트롤 훈련 집중…루키 돌풍 잠재우며 통산 5승
"아직은 미국보다 한국이 먼저…올해 2승이상 올릴 것"


‘남달라’와 ‘핫식스’가 떠나고 ‘최혜진 시대’가 활짝 열렸다. 최혜진(20)이 아찔하고도 화려한 ‘메이저 여왕’ 대관식을 끝냈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신인상과 대상을 휩쓴 최혜진은 생애 첫 메이저 왕관을 품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최혜진은 28일 경기도 양주시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K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 크리스F&C KLPGA 챔피언십(총상금 10억원·우승상금 2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연장 승부 끝에 박소연을 따돌리고 투어 통산 5승째를 수확했다. 최혜진은 “정말 우승하고 싶었던 대회에서 ‘이렇게 어렵게 우승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너무 행복해서 울음이 터졌다”고 감격했다.
 

최혜진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KLPGA 제공]


◆루키 돌풍 잠재운 메이저 한 방

지난해 최혜진이 ‘슈퍼 루키’로 투어를 호령했다면, 올해는 조아연과 이승연 등 루키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정은6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로 최혜진의 독주를 예상했던 양상과는 사뭇 달랐다. 최혜진은 앞서 국내 투어 4개 대회에 출전해 ‘톱10’ 이내 성적이 한 번밖에 없었다. 국내 개막전이었던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9위의 성적도 최혜진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았다.

“톱10 안에 들어도 잘한 거 아니에요?” 최혜진의 반문에 답이 있다. 그는 부담이 컸다. 높아진 기대치 탓에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올해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단다. 부담을 떨쳐낼 수 있었던 계기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이었다. 초청선수 자격으로 나선 이 대회에서 공동 5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와이 가기 전에 샷과 퍼트에 불안감이 있었는데, 좋은 감을 갖고 한국에 온 것 같다. 롯데 챔피언십에서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내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최혜진은 KLPGA 챔피언십 3라운드부터 공동 선두로 올라선 뒤 4라운드에서 단독 선두를 질주하다 연장 승부 끝에 정상에 올랐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최혜진은 “프로암 때부터 퍼팅 감이 좋더라. 11언더파를 쳤는데 그때 자신감이 확 올라왔고, 확신을 갖고 대회에 나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료들로부터 우승 꽃잎 축하 세례를 받고 있는 최혜진. [사진=KLPGA 제공]


◆승부사다운 메이저 사냥

최혜진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일찌감치 박세리, 박인비, 신지애, 박성현 등을 잇는 ‘골프 여왕’ 후계자로 꼽혔다. 프로 데뷔 전 KLPGA 투어 2승을 챙겼고, 여고생 신분으로 출전한 2017년 LPGA 투어 US여자오픈에서 준우승을 거두는 등 화려한 이력서를 쓰며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KLPGA 투어 데뷔 시즌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기량을 입증했다.

하지만 최혜진의 메이저 여왕 대관식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메이저 무관에 그친 최혜진은 이번 대회에서도 2타 차 리드를 잡은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아찔한 실수가 나왔다. 약 1.5m의 내리막 우승 파 퍼트를 놓친 것. 무섭게 추격하던 박소연이 이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연장전에 돌입했다. 최혜진은 심리적으로 쫓겼다. 18번 홀에서 계속된 연장전에서도 티샷 결과가 더 불리했다. 최혜진은 벙커에 빠졌고, 박소연은 벙커를 맞고 튕겨 나오는 행운이 따랐다.

크게 흔들릴 법도 한 상황. 하지만 역시 최혜진은 승부사였다. 벙커에서 친 두 번째 샷이 완벽했다. 홀 바로 옆 1m 가까이 붙이는 환상적인 샷이었다. 최혜진은 두 번의 실수 없이 침착하게 우승 버디 퍼트를 떨어뜨린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지막 라운드 후반에 흔들려 긴장했다. 특히 마지막 홀에서 긴장을 많이 해 실수를 했다. 연장전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우승 퍼트를 할 때도 ‘두 번째는 넣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쳤다.” 최혜진은 국가대표 시절 은사인 박소영 코치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냈다.

최혜진의 승부사 기질은 타고난 것이지만, 겨울 전지훈련에서 더 성숙해져 돌아왔다. 샷보다 마인드 컨트롤 훈련에 집중한 효과다. 최혜진은 “작년까진 실수하면 다음 홀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많았다. 계속 나를 다독이면서 연습하고 있다”며 “어려운 상황이 와도 더 집중할 수 있는 훈련을 하고 있고, 올해는 조금 더 안전하게 컨트롤하면서 치게 됐다”고 여유 있는 미소를 품고 말했다.
 

메이저 여왕에 오른 최혜진의 환한 미소. [사진=KLPGA 제공]


◆언니들이 빨리 오라지만··· 미국은 아직, 한국이 먼저

여자 골프 선수들에게 LPGA 투어 진출은 꿈이다. 하지만 최혜진은 서두르지 않고 있다. 최근 3년간 박성현, 고진영, 이정은6이 그랬듯 하나의 패턴처럼 된 ‘한국 평정 뒤 미국 진출’ 방식을 준비 중이다. “올해 목표는 국내 대회에서 잘하는 것뿐이다. 해외 투어 일정도 정해놓은 것은 없다.” 실제로 최혜진은 아직 US여자오픈 출전 계획도 잡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고 LPGA 투어 경기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되면 나가고 있다. 경험의 일환이다. 해외 투어만 나가면 언니들에게 늘 “빨리 미국 와야지”라는 말을 듣지만 뚝심이 장사다. “그냥 가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고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 준비를 많이 하고 싶다. 나는 미국에 가도 한국에 오고 싶을 것 같은데···.” 아직은 어른스러운 소녀다.

최혜진은 올해 목표 중 하나였던 메이저 우승을 이뤄냈다. ‘작년보다 좋은 올해가 되자’라는 목표도 변함이 없다. “지난 시즌 2승을 했지만, 2017년 1승을 하고 2018년 1승을 했더라. 한 해 2승 이상을 하고 디펜딩 대회에서도 잘하고 싶다. 꾸준히 롱런하는 선수가 되고 싶기 때문에 평균 타수 1위가 가장 욕심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