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부끄러운 대한민국 국회...동물도 식물도 아닌 ‘생물(生物)국회’로 바꾸자
2019-04-28 08:00
어디서 많이 본 낯설지 않은 풍경, 기시감이 들었다. 25일 늦은 밤 국회발 뉴스를 보면서 그랬다. 선거제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관련 법률을 접수하고 이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태우려는 정당들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정당 사이에 극한 충돌이 빚어졌다. 25일 저녁 6시 45분께부터 본격화되었다는 이 살벌한 대치는 26일 새벽 4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제1야당 사람들은 거의 모두 출동한 듯 겹겹이 인간띠를 둘러 법안 제출과 특위 회의를 하러 온 상대편을 물리력으로 저지했다. 33년 만에 발동되었다는 국회의장 경호권도 이 막으려는 자들을 뚫지 못했다.
다음 날 국회발 전란을 1면에 다룬 한 신문의 헤드라인은 이랬다. “정치의 실종··· 7년 만에 재현된 '동물 국회'" 감금·기물 손괴·폭행·상해·모욕 등의 표현도 어지럽게 등장했다. 어제의 격렬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묶음에도 눈이 갔다. 국회에 스티로폼과 모포가 등장하고 로텐더홀 등 국회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보다가 흉물스럽게 부서진 문에 꽂혔다. 702호 의안과 출입문인데, 이 문을 열려고 '빠루'를 동원했다고? 빠루가 뭐더라? 하다가 금세 기억이 났다. 속칭 빠루라 불리는 노루발못뽑이가 다시 등장한 사진을 보면서 정말 동물국회의 귀환이 실감났다. 불과 4시간 만인 26일 아침 여야는 이틀째 대치를 이어갔다. 거의 하루종일 격렬한 몸싸움을 다시 벌였고 결국 패스트트랙 지정이 무산되었다. 잠시 휴전일 뿐 곧 재개될 것이다. 여야는 서로 불법을 저질렀다며 고발전도 벌일 것이다.
이런 18대 국회의 반성으로 19대 국회부터 적용된 국회선진화법이 생겼다. 국회 본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체포·감금·협박 등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줄이고 패스트트랙 제도도 도입했다. 의결정족수를 과반에서 60%로 올린 선진화법 덕분에 19대 국회에서 폭력으로 얼룩진 동물국회는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되는 일이 없는 이른바 ‘식물국회’ 현상이 두드러졌다. 단적인 예가 가뜩이나 낮은 법안가결률이다. 18대 국회 16.9%에서 19대 국회에선 15.7%로 떨어졌고 20대 국회에선 11%대로 더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안이 발의된 뒤 처리되기까지 소요 기간도 한 달가량 길어졌다고 한다. 여야 간 합의가 되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으니 ‘끼워팔기’ 방식도 횡행했다. 이런 극도의 비효율과 낮은 생산성이 문제가 되면서 차라리 동물국회가 낫다는 목소리마저 터져나왔다.
국회가 동물국회·식물국회 소리를 듣는 근본 원인은 타협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사태에서도 선례는 무너졌고 협의는 사라졌다. 21대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여야는 타협 대신 대결을 선택하고 각자의 정치적 이해를 저울질하며 총선이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한 얘기는 귓등으로도 안 들릴 것이다. “정치인은 권력을 책임있게 수행해낼 자질과 역량을 갖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신념을 현실에서 실현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진정한 정치인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