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학문정책 수립 없이는 대학 초토화 될 것”

2019-04-18 11:57
5개 교수단체 모여 위기에 한 목소리
고등교육·학문생태계 위기 극복 토론

장기적인 학문정책이 수립되지 않고서는 현 학문시스템과 대학이 무너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5개의 교수단체는 18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학문정책 수립을 촉구하자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

김귀옥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대학이 죽어가고 학교가 죽어가고 있다”며 “학문정책의 새 판을 짜야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김 상임의장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방안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오늘 토론을 통해 협력해서 학문정책 관련법을 도출해내도록 하자”고 덧붙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신경민 의원은 “강사법 문제를 국회에 오고서야 알게 됐다”며 “장기적인 학문정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대학이 초토화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 의원은 “오늘 토론회에서 좋은 논의를 하면 국회 차원에서는 법적·예산적 지원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조승래 의원은 “강사법 시행으로 학문후속세대의 신분이 불안정해지고 학문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며 “학문정책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정확히 수립해 학문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해달라”고 주문했다.
 

[사진=신경민 의원실]

박거용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겸 대학교육연구소장은 축사에서 학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정책을 꼬집었다. 박 공동대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학문 정책이 필요하다고 수립 필요성을 강조해왔지만 교육 정책 논의만 가득하다”며 교육이 재생산적이라면 학문은 생산적이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철 전국국립대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 겸 경북대 교수회장은 학자와 자본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상임회장은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노벨상이 많이 나온 이유는 학자를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뒀기 때문”이라며 “연구 지원과 학자들의 거리가 있어야 좋은 연구가 나올 수 있다는 현실적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홍성학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학문정책을 노동의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홍 이사장은 “오랜 논의를 지켜보며 결국 학자의 신분보장, 학문노동조건의 개선, 안정적 일자리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학문노동정책으로 규정하는 것이 맞다”며 “강사법 시행 이후 오히려 전임교원의 강의 시수가 늘어나는 역설적 상황에서 이번 토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상철 한신대 교수를 필두로 발제가 시작됐다. 윤 교수는 ‘학문정책의 부재, 그리고 학문의 역할과 효용’을 주제로 발표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국가발전전략과 학문지식생산전략 간의 선순환구조가 부재한다”면서 학문연구를 관장하는 기구와 시스템이 부재함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기존 인문사회과학연구지원 정책을 하나씩 평가했다. 먼저 1999년 시작된 두뇌한국(BK) 21 사업에 대해 그는 “대학원의 육성과 연구의 활성화에는 기여했지만 이공계와 달리 인문사회과학의 소외와 위축은 해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BK21사업은 대학의 서열화와 수도권 집중화를 심화시켜 질적 연구성과가 아닌 양적 성과경쟁으로 나아가 학문생태계를 심각하게 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다.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안정적인 연구환을 지원했다고 평가받는 인문한국(HK)사업에 대해서는 학문내적으로 학문의 질적 성장이나 학문 분야간 소통의 활성화에는 기여했지만 연구의 양적 측면에 주력했고, 연구진 간 신분 차별 구조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사회과학(SSK) 지원사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자집단들 간의 연합과 융합은 긍정적이었지만 전임연구원의 고용 불안정과 보상체제 미흡을 지적했다. 윤 교수는 향후 학술정책이 국가수준으로 확대돼 공공적 학술기관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새로운 학문정책 수립의 원칙과 방향’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현 단계 학문정책 수립 방향으로 △전임교수들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 △국내 대학원의 정상화와 발전 △시민적 권리로서 진리 탐구의 자유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등교육·학문생태계 구축을 위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고등인문사회과학원(가칭) 설립 △대학연합 연구사업단 구성 △개인연구/소규모 연구 지원사업 개선과 강화 등 3가지 축을 기본틀로 삼아나가는 방안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