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인사이드]빈패스트에 담긴 '베트남의 꿈'

2019-04-10 12:00
정부 대대적인 후원 아래 빈그룹 전사적 역량 ‘총동원’
올해 3월 첫 신차출고...국산화 성공? "아직 높은 기술장벽"
“베트남 국민, 애국심 높아 자국브랜드 성공가능성 높다”

빈패스트(VinFast)를 두고 현대자동차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과 베트남의 최대기업이 시작하는 최초의 자동차 업체라는 타이틀. 자동차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두 창업자의 집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불도저'로 불린 것만큼이나 팜녓브엉(Phạm Nhật Vượng) 빈그룹 회장의 사업 추진력도 만만치 않다. 수십년의 시차를 둔 두 기업의 모습은 현재 베트남의 모습과 과거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베트남 최대 부호이자 최대기업의 창업자인 팜녓브엉 회장이 세계 자동차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수십년 전 정주영 회장이 '포니'를 개발하며 보였던 집념 그대로다. 비록 아직은 개발도상국의 자동차 메이커지만 빈패스트는 자국의 첫 승용차 브랜드이자 주변 국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첫 토종 자동차 브랜드라는 긍지가 담겨 있다.

한국에서 현대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빈패스트도 사실상 베트남 개별 기업의 도전이라기보다는 베트남의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출범 초기부터 정부의 대대적인 후원과 베트남 언론의 모든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국민들의 성원이 베트남 최초의 자체생산 브랜드라는 이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반년 이상 앞당긴 신차 출고식··· 판매전략은 ‘톱다운’ 방식

지난달 6일, 빈패스트는 첫 신차 출고식을 개최했다. 당초 2년이 걸릴 것이라던 예상보다 반년 이상 빨랐다. 빈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평소 빈그룹 계열사의 공식 대외행사에는 자주 참석하지 않는 팜녓브엉 회장도 이번 신차 발표회엔 직접 나서 빈패스트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보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신차에 대해서 조목조목 설명하며 “나는 차량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럭스(LUX) SA2.0' 시운전을 처음 한 사람”이라며 “우선 내 렉서스부터 빈패스트로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렉서스는 일본 도요타의 고급차 브랜드다.

이번 공개 시운전 행사에서 빈패스트는 지난해 파리모터쇼에서 선보였던 세단모델(럭스 A2.0), SUV모델(럭스 SA2.0) 등 럭스 시리즈 2개 차종과 소형차 파딜(Fadil) 모델 그리고 전동스쿠터 모델인 '빈패스트 클라라'의 공식 출시를 발표했다.

차량가격은 럭스 SA2.0이 18억1800만동(약 8900만원), 럭스 A2.0은 13억6600만동, 파딜은 4억2300만동으로 책정됐다. 초기 할인가를 제외하면 기본가격이 당초 예상보다 높은 수준이다. 빈패스트는 차량판매 전략을 가격대에 구애받지 않는 톱다운 방식으로 선택했다.

현재 빈패스트의 럭스 모델과 파딜 모델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호주 등 14개국에 155대의 자동차를 출하해 안전성과 내구성을 시험 중이다. 테스트 과정이 끝나면 상업용 버전의 양산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빈패스트는 “모델을 처음 주문하는 고객은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는 올해 9월부터 차량을 인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연말까지 추가로 빈패스트 7종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나수키' 실패 뒤 재도전··· 감세 등 정부 전폭 지원

빈패스트는 2004년 출범했던 '비나수키(Vinaxuki)'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비나수키는 지금까지 베트남 첫 국내 자동차 브랜드에 가장 근접했던 프로젝트로 여겨졌다. 하지만 부품조달과 자금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인도산 자동차가 저렴한 가격에 쏟아져 실패하고 말았다.

빈패스트는 단독으로 생산공정을 진행했던 비나수키와는 달리 해외 각국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크레디트스위스의 투자로 8억 달러(약 91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차량 디자인은 슈퍼카를 주로 디자인해온 이탈리아의 피닌파리나(Pininfarina) 스튜디오가 담당했다. 자동차의 핵심적인 부품인 엔진과 대부분의 생산 노하우는 독일 BMW의 기술력을 빌렸다. 그 외 자동차 주요 부품은 보쉬와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올해 7월 준공이 예상되는 하이퐁 첨단공장은 지멘스에 전문적인 공장운영 및 관리를 맡길 예정이다. 아울러 개발연구(R&D)센터를 설립해 독일 등 유럽 전문가들도 초빙할 예정이다. 빈패스트는 이처럼 후발주자로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핵심만 간추려 가장 효과적이며 빠르게 세계 자동차 시장에 진입한다는 전략이다.

빈패스트의 또 다른 강점은 베트남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있다. 빈패스트는 정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거의 최상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트남 정부는 2017년 9월, 총 35억 달러를 투자하는 빈패스트 공장 기공식이 열린 바로 다음 날 자동차부품 수입 관세를 사실상 철폐했다. 현재 하이퐁의 18개 경제구역 중 빈패스트 공장이 건설되고 있는 딘부-깟하이 경제구역(50만㎡ 규모)은 정부로부터 가장 먼저 개발이 허가된 곳이다.

빈패스트는 생산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으로부터 15년간 10%대의 기업소득세 감면 혜택도 바로 적용받는다.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수입이 발생한 시점부터는 4년간 기업소득세를 면제 받고 이후 9년간 납부해야 할 기업소득세는 50% 감면받는다. 베트남 정부는 이에 더해 빈패스트에 수출입 관세, 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 토지임대세 등에 대한 특별 혜택도 약속했다.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 건국 이후 지금까지 단일 기업이 진행한 산업 프로젝트 중 빈패스트처럼 큰 목표를 내걸고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없었다. 베트남 정부가 개별기업의 프로젝트를 위해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한 사례도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車' 국민들도 성원··· '애국마케팅' 기대감

빈패스트는 지난해 파리모터쇼에서 “이번에 선보이는 신차들은 베트남의 정체성을 지님과 동시에 베트남 국민에 의해, 베트남 국민을 위해 만들어진다”고 밝혔다. 빈패스트가 신차 출고에 맞춰 애국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이는 자국 자동차 브랜드가 즐비한 선진국 국민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빈패스트는 단지 빈그룹의 이윤창출 수단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베트남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빈패스트는 향후 출시되는 7종 모델에 대해서도 공개투표를 실시해 전국민적 관심을 끌어모은다는 계획이다. 앞서 빈패스트는 공식 출시에 맞춰 다른 회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디자인 공개투표를 실시한 바 있다. 이번에 선보인 빈패스트의 럭스 모델 2종 역시 4명의 디자이너가 제시한 20개 모델 중 베트남 국민 6만2000명이 투표에 참여해 직접 선정한 것이다.

빈패스트라는 이름엔 Việt Nam(Vietnam, 베트남), P(F)hong cách(Stylish, 스타일), An toàn(Safety, 안전), Sáng tạo(Creativeness, 창조), Tiên phong(Pioneer, 개척)이라는 의미가 응축돼 있다. 풀어보자면 베트남의 스타일이자 안전, 창의성, 개척을 의미한다. 이는 베트남 금성홍기에 담긴 5가지 의미에서 착안했다. 빈패스트는 그 이름만으로도 베트남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간절히 이번 모터쇼를 기다렸다”며 “빈패스트는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베트남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담고 있다. 이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베트남 자동차 브랜드라는 꿈을 대신해서 이뤄준 것“이라고 말했다.

빈그룹의 총역량을 동원한 마케팅을 통해 '빈패스트=베트남 자동차'라는 등식이 베트남에서 자리 잡고 있다. 빈패스트는 자동차산업으로서의 파급효과뿐 아니라 ‘빈패스트는 곧 내 차’라는 베트남인들의 긍지를 설파하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계획에 따라 차질없이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빈패스트는 세상에서 빠른 속도로 완성되는 중공업 프로젝트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베트남은 중산층 증가와 맞물려 승용차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빈패스트가 100% 자국 브랜드라는 강점만 잘 활용한다면 사실상 베트남에서 대부분인 합작회사들의 자동차는 빈패스트를 따라오기 힘든 구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빈패스트 하이퐁 사업장[사진=빈패스트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