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냐, 전두환 전 대통령이냐

2019-04-03 19:08
진보-보수 서로 다른 호칭 속에 우리 사회 엄청난 갈등 불씨 숨어 있어

지난 3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전두환’을 부르는 호칭은 언론사에 따라 두 개로 갈렸다. ‘전두환씨’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대체로 진보 쪽으로 여겨지는 언론사는 ‘전두환씨’ , 보수 쪽으로 여겨지는 언론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불렀다.


왜 이런 호칭의 차이가 생겼을까? ‘전두환’을 보는 가치 판단 또는 정서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해선 안 된다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쪽은 ‘전두환씨’로,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한다거나 인정해도 무방하다는 쪽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호칭한 것이다.


이런 판단과 정서의 차이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언젠가 ‘국론 분열의 시한 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란 전두환이 사망했을 때를 말한다. 전두환과 함께 ‘전-노’로 묶여 부르는 ‘노태우’가 사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또는 노태우가 사망할 경우 당장 두 가지 문제가 국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하나는 그들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 것이냐이다. 또 하나는 그들의 시신을 국립묘지에 안장할 것이냐이다.


유족들이 개인장과 개인 묘지를 원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그들이 국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원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국가장법에 전현직 대통령은 국장 대상자 중에서도 첫번째 순서로 돼 있다. 국장은 정부가 빈소를 설치, 운영하고 운구, 영결식, 안장식을 주관하는 것을 말한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을 국립묘지의 상징 격인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는 첫번째 대상으로 정해 놓았다.



여기까지로만 보면 전두환, 노태우 사망 시 국장으로 치르고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면 복권 뒤 국장-국립묘지 안장 가능한지 벌써 논란


그러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예외적으로 ‘국립 묘지 안장 불가’ 대상자가 규정돼 있다. 탄핵으로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이 첫번째 대상이다. 전-노는 탄핵을 받지는 않았으니 여기엔 해당되지 않는다. 두번째 안장 불가 대상자는 형법상 내란죄나 내란목적 살인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이다.


전두환은 1997년 4월 반란죄, 내란죄, 내란목적살인죄, 수뢰죄로 무기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노태우는 같은 죄로 징역 17년 형을 받았다. 두 사람은 형 확정으로 전직 대통령 자격을 상실했다. 이대로라면 전, 노는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1997년 12월 특별사면에 이어 1998년 복권을 받았다. 특별사면은 형 집행을 면제 해주는 것이다. 복권은 형 확정으로 상실한 자격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다만 복권됐다고 해서 형을 확정 선고받은 사실, 즉 전과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면법 규정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두 사람은 상실한 전직 대통령 자격을 복권으로 회복했고, 따라서 국장도, 국립묘지 안장도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면 복권의 법적 효력을 놓고 벌써부터 일부에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립묘지 안장을 주관할 국가보훈처부터가 그렇다.


국가보훈처는 “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이 사면·복권된 경우에도 기왕의 전과사실이 실효되는 것은 아니므로 국립묘지 안장 대상 결격 사유는 해소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천정배 의원이 전두환의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냐고 서면 질의하자 지난 1월 23일 회신한 답변서에서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지난 3월 23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및 전두환 처벌 촉구 광주전남시도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보훈처가 이런 의견을 고수할 경우 이른바 ‘태극기 세력’ 이 반발할 것이 뻔히 예상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촛불 세력’이 태극기 세력을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이 또 한번 대규모 시위장으로 변할 것이다. 잠재된 ‘시한폭탄’이 터지는 순간이다.

 법으로 명문화하면 좋겠지만 화합 이끌어낼 정치 리더십 부재가 문제

전, 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 것이냐에 대해선 더 심한 갈등과 대립이 예상된다. 국가장에 관한 규정이 국립묘지 안장의 경우보다 더 애매하기 때문이다. 국가장법은 전직 대통령을 국장의 1순위 대상자로 정해 놓으면서도 전제 조건을 붙였다. ‘국무회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장으로 할 수 있다’는 조건이다. 전직 대통령의 국가장 여부 결정을 대통령의 재량권에 맡겨 놓은 것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누가 대통령이든 전, 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하기로 결정하기도 쉽지 않고, 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반대 세력의 극렬한 저항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사면 복권을 받은 경우 국가장이나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되는지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국가보훈처도 천정배 의원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사면·복권의 효력에 대한 논란이 있고,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임을 감안하여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정배 의원은 2017년에 '전두환 국립묘지 안장 금지법'을 발의했다.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전씨와 노씨 등 헌정 파괴 행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은 사면·복권을 받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장하지 못 하게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법을 제정한다면 국립묘지 안장뿐 아니라 실시 여부의 결정을 대통령 재량에 맡긴 국가장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내란죄 같은 범죄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탄핵으로 파면 또는 해임된 전직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의 제정이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두 극단의 반대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다. 성냥개비 한 개만 갖다 대면 언제든지 폭발하고 말 긴장 속의 상황이다. 전, 노와 박근혜는 한쪽에는 나라를 구한 대통령이고, 다른 한쪽엔 나라를 망친 대통령이다. 이 두 세력의 화합은 먼 미래에는 몰라도 일정 세월 동안은 불가능하다. 화합을 이끌어낼 만한 정치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시한폭탄을 안고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