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한마디에 보고서 고친 신평사

2019-04-02 18:55

나이스신용평가가 내놓은 '증권사 지역·물건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 분포도'. 위는 수정 전, 아래는 수정 후. [사진=나이스신용평가]

신용평가사가 고객인 증권사 한마디에 보고서를 고쳤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는 3월 27일 국내 증권사를 대상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에 대한 보고서를 펴냈다. 부동산 시장이 움츠러드는 바람에 증권사에서 보유한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도 위험에 노출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역·물건별로 나누어 증권사마다 위험도를 매겼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 속한 주거용 부동산은 가장 안전한 등급인 위험4로 분류했다. 제주도는 위험2로 꽤 불안한 자산으로 보았다. 위험도는 위험1부터 위험4로 갈수록 낮아진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처음 내놓은 보고서에는 KB증권과 현대차증권이 '위험1'에 속한 부동산 자산을 가장 많이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가 확정채무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즉, 우발채무는 확정채무는 아니다. 부동산 경기만 좋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반대로 경기가 꺾여 손실을 내기 시작하면 확정채무로 둔갑할 수 있다.

두 증권사는 나이스신용평가 측에 수치 오류를 지적했고, 보충자료도 보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를 받아들여 보고서를 고쳤다. 바뀐 보고서에서는 KB증권과 현대차증권이 보유한 '위험1' 자산이 크게 줄었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증권사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회사로 바뀐 것이다.

이번 보고서가 대상으로 삼은 증권업계에서는 회사마다 자료를 공개하는 수준이 다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신평사 보고서와 실제 수치 사이에는 괴리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우발채무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차이를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부동산 PF 사업을 하나씩 따지면 실제 위험이 수치만큼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신평사는 수입 대부분을 평가를 받는 기업에서 내는 수수료에 의존하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업은 여러 신평사 가운데 골라서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다. 회사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쓰면 신평사를 바꾸면 그만이다. 이런 관계 때문에 신평사가 내놓는 자료를 믿기 어렵다는 불만도 꾸준히 나왔었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이번 보고서 수정에 대해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신평사는 해당회사에서 올린 공시를 근거로 관련자료를 집계한다"며 "현실적으로 모든 부동산 PF를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수치를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애초 부실한 기업에 대해서는 평가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기본적인 등급 평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