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IOC 위원장, 88올림픽 '南北분리개최안' 제안…소련참가 명분

2019-03-31 13:03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북한의 참여를 위해 남북체육회담을 주재하면서 남북의 분리개최 방안을 제안한 정황이 확인됐다. 

외교부가 31일 공개한 외교문서 1620권(25만여 쪽)에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사마란치 위원장은 북한이 88올림픽의 남북 분산개최를 수용하지 않을 거라고 예견하면서도, 소령 등 사회주의 국가의 대회 참가 명분을 제공할 목적으로 이를 중재안(案)으로 제안했다.

이 중재안은 1984년 LA올림픽이 열리기 전 줄리오 안드레오티 이탈리아 외무장관이 처음 제안한 아이디어다. 소련은 여기에 찬성하고 있으며 북한 역시 이러한 아이디어의 존재를 알고 있으나 "상부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밝힌 상황이었다.

1984년 9월 방한한 사마란치 위원장은 한국 고위인사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일부 종목의 남북 분산개최안에 대해 부정적이자 "북한은 결코 이 제안을 수락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안된다'고 하지 말고 'IOC가 공식적으로 제안해올 때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용의가 있다' 정도로만 답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회주의국가들이 LA대회 보이콧 이후 서울대회에 오고 싶어하고, 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단 한 가지 장애물이 북한"이라며 "그래서 한 가지 핑계를 찾고 있는데 만약 북한이 2∼3개 종목 개최를 수락하지 않으면 서울에 갈 구실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소련 등 공산권 국가의 대거 불참으로 '올림픽 정신'이 바랬던 1984년 LA올림픽의 아쉬움을 씻어내기 위해 남북한을 빈번하게 접촉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해왔다.

그러나 그의 예측대로 북한은 중재안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서울올림픽은 160개 국가의 참여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북한을 비롯해 알바니아·니카라과·쿠바·에티오피아·세이셸 등만 불참했다.

또한 북한이 88서울올림픽의 개최를 막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방해공작을 펼친 사실도 확인됐다.

중국이 서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을 열차에 태워 한국에 보내려 했으나,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중국 외교관의 증언이 담긴 문서가 공개된 것이다.

당시 주 파키스탄 한국대사대리는 1988년 8월 7일 외무부 등에 보낸 전문에서 전 주파키스탄 중국대사관 참사관을 인용, "중국이 철도편으로 북한과 판문점을 경유해 올림픽 선수단을 서울에 보내려고 북한과 교섭했으나, 북측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보고했다.

중국대사관 참사관은 북한의 서울올림픽 불참 결정을 두고 "어느 면에서 보나 잘못된 것으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처사"라며 "한국 측 제의대로 몇 개 종목을 할애받으면 북한이 충분히 체면 유지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중국 선수단은 88서울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항공편을 이용,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88서울올림픽 포스터 [사진=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는 1988년과 그 전해를 중심으로 작성됐으며, KAL기 폭파사건과 88서울올림픽 비화 등이 담겼다. 이밖에 남극기지 건설, 1978 한일대륙붕 협정,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등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됐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26차례에 걸쳐 약 370만쪽에 달하는 2만6600여 권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