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비핵화, 진정한 중재자가 해야 할 일들
2019-04-04 07:47
‘핵 있는 평화(nuclear peace)’의 함정에 빠져선 안돼
세간의 기대를 안고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2차 핵 협상이 실질적으로 결렬되면서 한반도가 새로운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다. 양측이 비록 협상 동력의 유지를 강조하면서 헤어졌다고 하지만 향후 전망이 결코 밝지 않다. 미국은 생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 폐기까지 언급하면서 ‘완전한 핵 포기’를 들고 나왔고, 북한은 과연 핵 협상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이라면서 공을 다시 미국에 넘겼다. 그러나 국내 정치적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까지 의식하면서 서두르지 않으려는 모양새다.
이 대목에서 영변 핵 시설 폐기가 북한 비핵화의 의미 있는 조치로서 미국의 일부 제재완화와 충분한 교환 가치가 있다고 기대하며 대북 경협에 박차를 가하려던 한국 정부는 난감해졌다. 대북 영향력 회복을 통해 ‘차이나 패싱’의 우려 불식과 함께 한반도 핵 문제에 본격적인 참여를 강조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훈수를 두던 중국도 고민에 빠졌다. 경기 하락세가 분명한 상황에서 중·미 무역 전쟁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 요구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모호한 중국의 북한 끌어안기가 북한 비핵화의 진척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보다 분명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계속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임에도 조정자나 촉진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한국에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가다듬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북핵 문제의 중재자나 촉진자라는 애매한 입장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 정부가 김정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전달하면서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튼 것은 분명하지만 아쉽게도 그 결과만을 기다린 것도 사실이다. 진정한 중재자가 되려면 중재안이 있어야 한다. 협상 결과에 따라 수동적으로 남북 협력을 통해 비핵화 동력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남북 소통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북한 편을 드는 인상을 줄 필요는 더욱 없다. 북한에도 분명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해야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 미국에도 구체적 중재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북한과의 교류는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다. 전제의 해결 없이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음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중국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북한은 이미 중국을 협상에 끌어들였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면서, 불완전한 비핵화 협상을 통한 종전선언이나 평화체제 구축은 주한미군 철수나 사드 문제 재점화 등 중국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런데 우리 대중 외교는 실종됐다. 소통은 꼭 협조를 구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의지와 원칙을 분명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소통이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과 경제관계가 중요하다고 해서 70%가 중국발이 확실한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데도 할 말을 못하고, 대놓고 정기적으로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중국 전투기에 대해서도 형식적인 항의만 계속한다면 이야말로 스스로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상황이 어렵다고 피하면 결국 상대에게 빌미만 제공하는 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