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도 산재다] 산재法엔 '미세먼지'가 없다

2019-03-13 04:00
환경미화원ㆍ건설노동자 등 숨막히는 잿빛하늘아래 일하는데
호흡기 질환 호소해도 인과관계 입증 어려워
업무상 재해 인정 싸고 노동자 소송 이어질 듯

미세먼지에​ 노출돼 있는 환경미화원. [사진=아주경제DB]


환경미화원 등 미세먼지에 취약한 옥외 노동자들은 관련 산업재해(산재)가 우려되지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자가 근무 중 천식, 기관지염 등이 생겼을 경우 미세먼지가 원인이라는 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부는 미세먼지 가이드라인을 마련, 사업주가 노동자들에게 마스크 지급 등 보호조치를 하도록 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에 불과하다.

지난 11일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포함시킨 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미세먼지 피해에 대한 정부 대처 여부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수록 사업장을 상대로 한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돼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미세먼지 산재 예방과 처리 방안 등 관계부처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등이 조사한 업무상 질병 산재 현황을 보면 2014~2018년 미세먼지 관련 신청은 총 60여건으로, 매년 10~15건 접수되고 있다. 이 중 산재로 승인된 건은 15건에 그쳤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으로는 작업환경, 도로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의 가해요인이 미세먼지인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해당 법령에 미세먼지를 지칭하는 용어가 없다. 현재 미세먼지보다 입자 크기가 큰 진폐 등 분진을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

환경미화원, 건설현장 근로자 등 미세먼지에 노출되기 쉬운 노동자들이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을 호소해도 현행 법으로는 구제받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급기야 고용부는 지난 2월 장시간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미세먼지 대응 건강보호 지침서’를 마련, 각 사업장에 배포했다. 지침서는 미세먼지 사전준비, 주의보·경보 등 단계별로 사업주가 노동자 보호조치를 할 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지침서는 △사전준비 단계- 1회용 마스크 항상 비치 등 △주의보 단계- 미세먼지 민감군으로 분류된 노동자 작업 단축 또는 추가 휴가시간 제공 △경보 단계- 자주 쉬고, 중작업 날짜를 바꾸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침서가 사업장별로 자체 관리계획을 마련해 실시토록 하는 가이드라인 성격에 그치다 보니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고농도 미세먼지에 대비해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이 '드라이브 스루(차로 테이크아웃)' 계산원처럼 미세먼지 취약 직원을 위해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일부 매장에 불과하다.

향후 사업장을 상대로 한 노동자들의 줄소송도 예상된다. 정부로부터 미세먼지 관련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가 보상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법원은 미세먼지 영향이라는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고 판결해 노동자가 패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미세먼지가 '사회재난'에 포함될 경우, 미세먼지 대처와 지원, 피해 보상 등 국가 차원 대책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미세먼지 취약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사업주의 미세먼지 대처를 명문화하는 산재보상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공인노무사회 관계자는 “미세먼지 유해성이나 호흡성 질환 발생 여부 등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앞으로 산재 인정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며 “공기 정화 등 작업환경에 대한 사업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방식으로 법 개정 등 제도적 보완을 하고, 관계부처도 이를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