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가로수길 쇠락(下)] “패션 성지 옛말, 백화점과 차이 없으니 사람들 안와요”

2019-03-13 07:23
신규 출점한 패션매장은 ‘썰렁’…홈퍼니싱·애플스토어만 ‘북적’
공실 폭탄에 월세 떨어져…3개월짜리 팝업스토어 등만 빼곡

지난 8일 오후 신사동 가로수길의 애플스토어 매장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사진=서민지 기자]

지난 8일 오후 찾은 신사동 가로수길 전경은 ‘신사동 가로수길=패션 성지’는 옛말이라는 걸 실감케 했다. 빼곡히 들어섰던 패션·뷰티 매장은 임대 딱지가 붙은 공실로 남아 있거나 백화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대기업 브랜드들, ‘떴다방’ 형식으로 3개월마다 치고 빠지는 팝업스토어 등이 자리를 채웠다.

대표적으로 F&F 디스커버리익스페디션은 최근 ‘홀리스터’ 매장으로 오랫동안 공실이었던 자리에 첫 번째 콘셉트 스토어를 오픈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전문그룹인 한섬의 자회사 현대G&F는 지난달 28일 ‘타미진스’ 직영 매장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열었다. 가로수길 중심 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는데, 타미진스까지 함께 오픈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날 매장 안에는 물건을 정리하는 직원밖에 없거나 드문드문 아이쇼핑을 하는 일부 외국인 관광객이 전부였다. 업계 관계자는 죽어가는 가로수길에 신규 출점을 하게 된 이유를 묻자 “10·20세대가 최근 가로수길을 많이 찾는 추세라더라”면서 “현재 홍대·합정 등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근 공실 폭탄을 이기지 못하고 월세가 폭락한 것이 주요 배경이라는 것이다.

다음 날인 9일. 주말에 찾은 가로수길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패션 매장에는 여전히 손님이 드물었다. 다만 홈퍼니싱 전문점과 라이프스타일숍 매장에는 젊은 세대가 붐볐다. SPA브랜드 ‘자라 홈’, 신세계인터내셔날 ‘자주(JAJU)’, ‘네프 호텔(Neuf Hotel)’ 등 가로수길 중심 거리에 군데군데 자리잡은 홈퍼니싱 전문점에선 만져보고, 앉아보고, 체험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공실과 공실 사이에 그나마 살아남은 매장들이다.

특히 총 5개층으로 이뤄져 있는 네프 호텔은 외관을 빈티지한 호텔처럼 꾸몄다. 외국인 관광객이나 10·20세대는 주로 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매장을 둘러봤다. 1층에는 의류 및 액세서리가 있고 2층~5층까지는 프리미엄 패브릭, 가구, 홈데코 등이 모여 있는 편집숍이다. 이외 식·음료 매장 ‘더앨리’, 삼성물산의 라이프스타일숍 ‘메종키츠네’에도 사진을 찍거나 음료를 마시는 10·20세대를 만날 수 있었다.

아울러 가로수길 메인 2차선 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애플스토어 실내는 마치 가로수길 전성기를 보는 듯했다. 주변에는 공사하거나 1층이 비어있는 건물이 수두룩한데, 유독 애플스토어 실내만 사람이 바글바글해 분위기가 대조됐다.

애플스토어 앞에서 만난 김민배씨(33)는 “3~4년 전에는 가로수길에 옷을 사러 자주 왔지만 최근에는 백화점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 굳이 옷을 사기 위해 가로수길을 와야 할 이유를 못 느낀다”면서 “차라리 포인트, 주차 공간 편리 등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백화점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