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 등장한 '루벤스 그림'은 성화? 포르노?

2019-03-12 11:57

화가 페테르 루벤스의 그림 '시몬과 페로'. [사진=구글 검색]



지난 11일 열린 '사법농단' 재판에서 한 그림이 언급됐습니다.

바로 손발이 묶인 늙은 노인이 한 여인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이 그림인데요.

사법농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임종헌 전 법원 행정처 차장이 자신의 첫 재판에서 이 그림을 언급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 그림을) 포르노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성화라고 한다"며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그는 약 10분간 작심하고 검찰을 비판했는데요.

임 전 차장이 재판장에서 화가 페테르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로 잘 알려진 이 그림을 거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그림에 담긴 사연에 대해 알아봐야겠습니다.

이 그림은 사실 로마에 저항한 독립 투사가 굶어 죽을 위기에 놓이자 딸이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젖을 물리는 장면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알고 보면 외설적인 포르노가 아닌 성화로 보일 수 있는거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사법 농단' 사건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임 전 차장은 이런 루벤스 그림의 사연에 빗대어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사법농단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임 전 차장은 지난해 1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어제, 4개월여만에 법정에 나온 그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법원을 떠난 후 2년간 오해와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다가 감옥에 갇히고 법정에 서게 돼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30년 법관 생활동안 최선을 다해 사법부를 위해 일했다고 생각하지만, 사법행정 과정에서 담당한 업무로 인해 엄중한 책임이 불가피하다면 당연히 감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거래와 관여를 일삼는 부패의 온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고, 사법행정을 담당했던 모든 법관을 인적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저들에게도 사법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선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법관의 재판 독립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사법부가 사법부 독립이라고 해서 유관기관과 관계를 설정할 때 '유아독존'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원만한 관계를 설정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건 행정처가 담당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죠.

그러면서 "재판독립의 가치가 훼손돼서는 안 되기에 늘 삼가하고 조심했다"며 "부득이 의견을 내거나 재판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것이 일선 법관의 소신과 양심을 꺾고 행정처의 의중을 강제로 관철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임 전 차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가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도 했죠. 그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그린 그림은 너무나 자의적"이라며 "임의로 그린 범죄의 경계선은 폭이 너무 좁고 엄격하다"고 항변했습니다.

더불어 "사법 관련 중요 권한을 놓고 문건 작성시점까지 파악된 내용을 정리하고 내부적으로 공유하며 상존가능한 여러가지 방안을 브레인스토밍하듯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라며 "내부 논의를 위한 문서일 뿐, 이는 검찰도 청와대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제가 보기에 공소사실 가운데 일부는 사법행정권의 경계를 벗어나거나 이탈하는 등 남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있다"면서도 "그것이 형법상 직권남용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는 "재판부께서 공소장에 켜켜이 쌓여있는 검찰발 미세먼지에 반사돼 형성된 신기루가 만든 허상에 매몰되지 말아달라"며 "피고인과 증인의 진술을 차분히 듣고 무엇이 진실인지 공정하고 성실하게 판단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당부했어요.

"공소장은 켜켜이 쌓인 검찰발 미세먼지에 반사돼 형성된 신기루와 같은 허상입니다. 이에 매몰되지 말고 무엇이 진실인지 공정하고 충실하게 심리해 주십시오."

임 전 차장의 주장대로 사법농단이 검찰발 미세먼지에 반사돼 형성된 신기루와 같은 허상인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관계자들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정의당 윤소하,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1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사법농단 가담 법관 탄핵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