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비판의 한계 일깨운 김경수 재판 논란
2019-02-20 18:00
민주당, 김경수 재판 판결문 분석 "물적 증거 없고 추론이 대다수" 비판 쏟아내…
더불어민주당은 2월 19일 김경수 경남도지사 1심 판결문 분석 보고대회를 가졌다. ‘더불어민주당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 특별위원회’가 주관했다. 대회에서 이 위원회 위원장인 박주민 의원은 “판결문은 ‘보인다’ ‘보이므로’라는 추론이 대다수”라고 비판했다. 서기호 전 의원도 “물적 증거는 없고 정황 증거, 진술 증거뿐”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김경수 지사 판결 비판을 두고 “삼권 분립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비판에 대해 박주민 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삼권 분립이라고 하는 거는 단순히 권한을 분리해서 놓은 게 아니라 체크를 하게 돼 있는 것이다. 판결이나 재판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 국회 법사위에서 주로 하는 것도 판결 비판이다. 판결 비판은 민주당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당도 늘상 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다.” 사법권은 국민이 법원에 위임한 것이다. 따라서 박 의원 말대로 국민 누구든 판결을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판결에 대해 뭐든지 비판할 수 있는 것일까? 판결 비판에 아무런 한계도 없는 것일까? 정당들이 이 당 저 당 가릴 것 없이 자기 측 인물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 정의가 살아 있다”고 법원을 치켜세운다. 그러다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언제 그랬냐 싶게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고 맹비난한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경수 지사 재판에서 담당 재판장을 “양승태 키즈”라고 비난하듯 재판장 개인을 인신 공격하는 일도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과연 판결에 대해 무엇이든 비판해도 되는지, 비판의 한계는 없는 것인지 하는 점은 정치권이나 법조계, 학계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문제이다.
형사 재판은 두 측면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할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죄 증거가 인정된다면 그 행위의 반도덕성이나 반사회성, 개인 인권에 미칠 영향 등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전자가 사실 판단의 문제라면 후자는 가치 판단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 사례를 보자. 이 사례에서 사실 판단 부분은 ‘피고인이 정말로 종교적 신념을 가졌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고 볼 만한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가치 판단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게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병역거부가 사회 전체의 공익에 미치는 영향, 당사자의 양심의 자유나 행복 추구권에 미칠 영향 등 여러 쟁점이 들어 있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라 그 판단이 다를 수밖에 없다. 판결 중 이런 가치 판단 부분은 자유로운 비판 대상이 될 수 있고 돼야 한다. 그래야 판결이 국민 상식이나 법 감정과 동떨어지지 않고 일반 국민의 평균적인 윤리 의식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판단 부분, 즉 유죄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판단은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할 문제이다. 형사소송법에 증거 유무 판단은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에 따르게 돼 있다. 자유심증주의란 증거 유무 판단을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긴다는 원칙이다. 형사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과 검사는 각자에게 유리한 여러 가지 주장과 물적 증거, 증인들을 내놓는다. 서로 간에 주장과 반박, 재반박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이렇게 상반된 주장과 증거들 중에서 무엇을 유죄 증거로 인정하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긴다는 게 자유심증주의이다. 자유심증주의는 사법 제도의 골간이자 근본이다.
증거 유무의 판단을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기는 이유는 그것이 실체적 진실 발견에 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법관은 피고인과 검사 양쪽의 주장과 반박, 재반박은 물론이고, 피고인과 증인들의 표정과 진술 태도 등 모든 것을 현장에서 생생히 듣고 본다. 미심쩍은 것은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법관은 누구보다도 사건의 진실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하는 가치 판단은 다수 여론, 즉 사회적 공감대에 따라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는 다수결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건의 내막을 잘 모르는 100명보다 진실 파악에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법관 한 명의 판단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유무죄 판단은 법관의 고유 영역…비난 삼가하고 존중해야
법관도 인간인 이상 유무죄 판단에서 실수할 수 있다. 오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법 제도는 이런 오판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만든 제도이다. 대신 오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다. 1심, 2심, 3심 제도가 그것이다. 하급심에서 잘못 판단한 게 있으면 상급심에서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재심 제도라는 것도 있다. 대법원 확정 판결 뒤라도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 증거가 조작됐음이 밝혀졌다든지, 유죄를 뒤엎을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든지 하면 다시 재판하게 하는 것이 재심 제도이다. 3심 제도나 재심 제도는 인간에 의한 심판이라는 사법 제도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최대한 바로잡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그러나 오판인지 아닌지, 즉 유무죄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다툼은 법정 밖이 아닌 법정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이 법정 밖에서 “왜 증거도 없이 유죄 판결을 내렸느냐” 또는 "증거가 명백한데 왜 무죄 판결을 내렸느냐"고 법원을 비난하는 행위는 법관의 자유심증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유심증주의를 부정한다면 인간에 의한 심판이라는 사법제도는 성립할 수 없다. 컴퓨터나 주사위 던지기로 재판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정 밖에서 유죄나 무죄 판단을 비난하면 법관이 부당한 압력을 받아 양심에 따른 자유로운 판단을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재판마저 목소리가 크거나 힘이 센 집단의 뜻대로 된다. 법이 아니라 힘과 우격다짐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판결을 비판하되 그 한계를 가치 판단 영역에 제한하고, 유죄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실 판단 부분에 대해서는 법관의 자유판단을 존중하는 사회가 법치 사회이다. 민주당의 김경수 지사 판결 비난은 법치 사회가 되려면 아직 멀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