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중국증시 커촹반이 뭐길래…상장하면 10억원 보조금도

2019-02-13 12:54
상하이판 나스닥 '커촹반' 집중해부
시진핑이 밀어붙인 '커촹반'···석달 만에 거래세칙 '뚝딱'
커촹반 출범 앞두고 中 분위기 '띄우기'

중국 상하이거래소에 이르면 내달 '커촹반'이 출범할 예정이다. [사진=신화통신]


A라는 회사는 2015년 중국 저장성에 설립된 전기차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이다. 그동안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매년 매출의 1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전기차 관련 특허만 수십개다. 벤처투자자들은 A라는 회사 가치를 20억 위안(약 3310억원) 이상으로 매기고 있다. 하지만 A 회사는 아직 흑자 전환엔 성공하지 못한 상태다. 

이는 기자가 가상으로 설정한 상황이다. 누가봐도 성장 잠재력이 커보이는 A 회사엔 그동안 중국 증시에 상장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A 회사도 상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 바로 '상하이판 나스닥'이라 불리는 벤처 스타트업 기업 전용증시,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을 통해서다. 중국은 커촹반을 통해 A 회사 같은 혁신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시진핑이 밀어붙인 '커촹반'···석달 만에 거래세칙 '뚝딱'

"상하이거래소에 신생 하이테크 기업을 위한 커촹반을 개설하고, 주식발행 등록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겠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초 커촹반 출범을 공식화한 지 석 달도 채 안돼서 커촹반 주요 거래세칙(초안)이 공개되는 등 중국 정부는 커촹반 개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르면 내달 중에 상하이거래소에 커촹반이 개설될 예정이다. 

사실 중국엔 이미 상하이, 선전 메인보드를 비롯, 선전 거래소엔 중소기업 전용증시 중소판(中小板), 벤처기업 전용증시 창업판(創業板)이 개설돼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 또 다시 벤처 스타트업 기업 전용 증시인 커촹반을 만드는 데 속도를 내는 이유는 기술 스타트업을 적극 육성하려는 데 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기술 경쟁력에서 뒤처지면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기술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미래 경제 성장동력인 혁신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커촹반을 통해 미래 혁신 기업들이 자금 조달 채널을 한층 더 다양화하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그래서 커촹판에 대해선 기존 증시와 차별화된 획기적인 조치가 마련된다. 

지난달 30일 상하이거래소가 발표한 커촹반 거래세칙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기업 상장이 더 수월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이 줄곧 준비해왔던 주식등록제(注冊制)가 커촹반에서 중국 최초로 시도되면서다.

주식등록제란 현행 심사비준제(核准制)와 달리 상장 예비기업들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검증 받으면 등록절차를 거쳐 상장하는 것이다. 상장 예비기업 서류 검증 권한이 기존의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가 아닌 하위기관인 상하이거래소로 이전됐다.

사실 기존 상하이·선전 메인보드나 창업판에 기업들이 상장하려면 증감회의 까다로운 심사승인을 거쳐야 했다. 이로 인해 수백 개 기업들이 증시 상장을 위해 몇 년씩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등록제를 시행하면 기업들은 길어야 6개월 이내 증시에 오를 수 있게 될 예정이라고 증권당국은 밝혔다. 또 커촹반에서 주식등록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한 이후 이를 향후 창업판같은 다른 주식시장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기업 상장 문턱도 대폭 낮췄다. 커촹반은 정보통신(IT), 첨단제조장비, 신소재, 신에너지, 환경보호, 바이오제약 등 하이테크 산업이나 전략적 신흥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이면 아직 흑자를 내지 못했더라도 상장할 수 있도록 했다. 순익이나 매출이 적더라도 연구개발(R&A) 투자를 많이 하거나, 우수한 기술력이나 제품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면 상장을 할 수 있도록 한 것. 기존 중국 증시가 최소 1년 이상 순익을 낸 기업에만 상장을 허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반면 경쟁력 없는 기업으로 판단되면 가차없이 퇴출시키는 등 엄격한 퇴출제도도 적용된다. 흑자를 내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주력사업과 무관한 거래에서 매출이나 순익이 주로 창출되는 등 해당 기업이 실질적인 경영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된 경우 퇴출시킨다는 규정 등이 새로 생긴 게 대표적이다.

또 상하이·선전증시에서는 퇴출 요건에 해당되는 기업에 대해 일시 거래중단 후 재개, 재상장 같은 기회를 주던 것과 달리 커촹반에서는 곧바로 상장 폐지시킨다. 상장도, 퇴출도 쉽게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시장의 진출입 통로를 뻥 뚫는다는 얘기다.

이밖에 기존 증시에서는 허용하지 않았던 기업 최대주주나 경영진에 보유 지분율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토록 하는 차등의결권이나, 계약통제모델(VIE·Variable Interest Entities)도 허용된다. VIE는 인터넷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인터넷 업종에 대한 외국인 투자 제한 규정을 우회하기 위해 이용하는 기업 지배구조 방식이다. 알리바바 같은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대부분 VIE 구조로 운영된다. 2014년 알리바바가 중국이 아닌 미국 증시에 상장한 것도 중국이 VIE구조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식 가격제한폭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상장 당일부터 5거래일간 주가 상·하한폭 제한을 두지 않고, 그 이후부터 일일 상·하한폭을 ±20%로 제한한 것이다. 기존의 상하이·선전증시에서는 상장 첫날 상·하한폭 제한을 ±44%로 두고, 그 이후부터는 ±10%로 둬왔다.

기존 중국증시에서는 기업공개(IPO)시 적용되는 주가수익비율(PER)이 23배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했지만, 커촹반에서는 이를 폐지했다. 이로써 하이테크 기업들이 IPO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커촹반에는 개미투자자가 투자할 수 없다. 2년 이상 증시 투자경험이 있고, 50만 위안 이상 투자자금을 가진 투자자만 투자하도록 해 전문투자자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할 예정이다.  

중국 매일경제신문은 커촹반이 출범하면 단기적으로 중국 본토증시에서 자금이 이탈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증시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왕후이황(王輝煌) 중싱후이진투자 매니저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기관투자자나 외국인 자금이 중국 증시에 더 많이 몰려올 것"으로 내다봤다.

◆"커촹반 지수, 커촹반 보조금···" 출범 앞두고 분위기 '띄우기'

커촹반 거래세칙 공개 의견수렴이 2월 말까지 한 달간 이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커촹반은 이르면 3월에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 중국 증시도 서서히 안정세를 보이며 커촹반 출범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올 들어 상하이종합지수 누적 상승폭은 12일 종가 기준으로 7%가 넘는다. 

중국 정부도 커촹반 출범을 앞두고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이다. 각 지방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커촹반에 상장시킬 기업을 물색하느라 바삐 움직여왔다. 중국 온라인매체 펑파이신문은 지난해 말부터 상하이, 후베이, 저장, 안후이, 장쑤, 산시, 허난 등 각 지방정부가 현지 과학혁신 기업 중 경쟁력 있는 업체를 추려내 커촹반 상장 후보기업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커촹반 상장기업엔 보조금을 준다는 지방정부도 있다. 지난 10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산둥성 지난시 정부는 최근 커촹반 상장기업에 600만 위안(약 10억원)을 한번에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통 큰' 계획을 발표했다. 안후이성 정부도 지난해 11월 커촹반 상장 기업에 장려금 200만 위안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상하이거래소는 오는 15일 '커촹반 지수'도 공개한다. 'G60커촹주랑지수(G60科創走廊指數)'라 명명된 이 지수는 상하이, 쑤저우, 허페이, 항저우 등 창장삼각주 9개 도시와 상하이거래소가 공동으로 만든 것이다. 우선은 9개 도시 경제발전 현황을 반영한 G60커촹주랑 종합지수를 먼저 출범시킨 이후, 커촹반 운영이 어느 정도 자리잡으면 9개 도시의 주요 커촹반 상장기업 종목으로 구성된 G60커촹주랑 성분지수도 잇달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