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거주 '심우장' 사적 지정 예고

2019-02-12 10:15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 문화재 등록 예고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항일독립 문화유산인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을 각각 사적 지정과 문화재 등록을 예고하고, ‘인제성당’ 등 2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 예고하는 서울 성북구의 ‘만해 한용운 심우장’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1933년 건립해 거주한 곳으로, 독립운동 활동과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등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심우’란 소를 사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자’라는 의미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심우장은 집의 좌향을 총독부의 방향을 피하여 동북방향으로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한용운 선생의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고, 선생이 여생을 보낸 곳이다.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사적으로 지정되면 2017년 10월 등록문화재 제519호로 등록된 ‘구리 한용운 묘소’와 함께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기릴 수 있는 뜻 깊은 장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에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이봉창 의사(1900~1932)와 관련된 유물은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백범 김구에게 보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 3건이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처단하고자 하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선서문으로 이봉창 의사의 대표적인 항일투쟁 유물이다.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 김구 선생이 이봉창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인 안공근 집으로 데려가 선서식을 거행하고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는 1931년 12월 24일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한 것으로, 의거실행을 ‘물품이 팔린다’라는 대체 용어로 약속해 사용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1931년 12월 28일 김구 선생이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이봉창 의사에게 의거자금 100엔을 보낸 송금증서다. 이는 이봉창 의사가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본 국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의거의 전개과정과 항일독립 의지를 드러내고 있고 이봉창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에 기폭제가 됐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역사적인 사건이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등록될 예정이다.

‘인제성당’과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는 이번에 등록문화재가 됐다.

등록문화재 제742호 ‘인제성당’은 한국전쟁 당시 포격으로 상부구조가 파괴돼 기존에 남아 있던 건물의 콘크리트 기초를 그대로 이용해 건축했다. 본당과 사제관을 하나의 건축물로 축조한 방법은 동시대 기타 성당건축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인제성당만의 중요한 건축적 특징으로 의미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등록문화재 제743호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는 강원도 지역 선교를 담당할 수녀 양성을 위한 시설로, 1959년 신축 이후 1962년 증축되는 과정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2동의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낸 건축적인 특징이 주목된다. 또, 강원도 지역 선교활동 중심지라는 공간특성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문화재청은 ‘인제성당’,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 등 2건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협력해 체계적으로 관리‧활용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