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노영민 실장의 첫번째 임무
2019-01-09 17:28
이번에는 청와대 인사수석실 5급 전 행정관이 논란이다. 당시 34살, 3개월 차 초임 행정관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휴일, 카페에서 육군 참모총장과 독대했다. 육군 참모총장은 50만 육군을 통솔하는 책임자다. 그렇다하더라도 청와대 해명처럼 직급과 나이를 떠나 못 만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공적 업무 수행이 전제될 때 맞는 말이다. 형식도 반듯해야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 둘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시점, 장소, 형식, 내용까지 모든 게 통념을 뛰어넘는다. 두 사람은 2017년 9월 만났다. 그해 12월 예정된 장성급 인사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육군 인사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게 평일을 제쳐두고 휴일에 만나야할 만큼 다급한 일인지 의문이다. 그 자리에는 청와대에 파견 나온 현역 대령이 동석했다. 그 대령은 12월 인사에서 별을 달았다.
장소도 석연치 않다. 상식적이라면 청와대 인사수석실이나 참모총장 집무실이라야 한다. 그런데 길거리 카페에서 육군 참모총장과 청와대 행정관이 마주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복잡한 출입 절차 때문이라고 방어했다. 국민들 눈에는 외부 눈을 의식한 장소 선택으로 보인다. 형식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일이라면 인사 참모를 만나도 충분하다. 이런 일들이 겹쳐 의혹을 키우고 있다. 독자적 행동이라면 권력에 취한 것이며, 다른 이유라면 합당한 해명이 필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직급과 나이는 핵심이 아니다. 보수언론과 야당은 공격 포인트를 잘못 짚었다. 나이가 문제라면 홍국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홍국영은 정조 당시 최고 권력자였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도승지, 경호실장인 숙위대장, 참모총장인 훈련대장까지 한 손에 쥐었다. 그때 나이가 28살이다. 스물여덟 홍국영은 장유유서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시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원로대신들을 상대했다. 나이로 따졌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때로는 형식이 실질을 지배한다. 미혼모를 대하는 시선에서 그런 의식을 읽을 수 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뿌리깊다. 생명은 같은 무게로 존중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혼모 자녀를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같은 생명이지만 한쪽은 축복 받는 반면 다른 쪽은 편견으로 대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결혼제도라는 형식을 갖췄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일뿐이다. 형식이 그만큼 중요할 때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군과 경찰 인사에 청와대 입김이 작용한다는 우려가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권과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같은 행태가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장실에 있을 때 만난 한 장교는 이렇게 토로했다. 군인들이 지휘관을 바라봐야하는데 청와대와 정치권만 보고 있다고. 결국 정도를 넘어선 인사 개입이 정치군인을 만들고 있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군과 경찰은 엄정한 지휘 체계가 있을 때 강하다. 그러려면 상관에 대한 존경심이 첫째다. 존경심은 포용력과 치우침 없는 리더십에서 생긴다. 외부 입김에 따라 기준점이 오락가락한다면 누구도 상관을 존경하지 않는다. 강한 군대는 기준을 세우는 일에서 시작한다.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런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당태종은 창업(創業)과 수성(守城) 가운데 어느 게 더 어렵냐고 물었다. 위징(魏徵)은 “나라를 세우고 나면 군주에게 교만이 싹튼다. 나라가 쇠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오만함을 경계했다. 집권 3년차다. 문재인 정부는 교만이 싹트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어제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은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언급했다. 상대에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하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들에게 준 글이다. ‘대인춘풍(對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 듣기 좋은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 국정운영 철학이 되어야 한다.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부여된 첫 번째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