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위기는 어떻게 오는가

2018-12-27 15:21

[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대통령 지지율은 40%대로 주저앉고, 민주당 지지율은 40%대가 깨졌다. 수개월째 고착화된 현상이다.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 또한 처음으로 부정과 긍정이 역전됐다. 전직 청와대 특감반원은 연일 폭로를 이어가고, 청와대는 해명에 진땀을 빼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에 전해진 최근 소식들이다. 안타깝다. 언제부터인지 어두운 소식만 들린다. 여론조사와 지지율, 그리고 여러 경제 지표에 잇따라 경고등이 켜졌다. 

리얼미터는 27일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를 43.8%로 발표했다. 역대 최저다. 반면 부정 평가(51.6%)는 처음으로 50%대에 진입했다. 국회 경제재정연구원 여론조사(22~23일)는 이런 상황을 거든다. “현 정부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무려 66.2%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긍정(29.6%)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10명 중 9명은 위기 또는 어려운 상황(88.1%)이라고 답했다. 위기가 아니라고 줄기차게 말해왔던 정부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앞선 한국갤럽 12월 3주 조사(18~20일)에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데드크로스’는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질렀음을 뜻한다.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데드크로스에 접어들면 회복은 어렵고, 끝내는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집권 20개월 만에 찾아온 데드크로스가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계속되는 지지층 이탈이다. 무엇보다 뼈아픈 건 20대다. 20대는 문재인 정부 최대 우호 세력이다. 그런 20대가 등을 돌렸다.

20대에서 부정적 평가는 무려 68.6%에 달했다(국회 경제재정연구원). 보수 성향이 강한 50대(69.7%), 60대(68.8%)와 비슷한 수치다. 특히 20대 응답자 93.1%는 현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운데 가장 높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역시 20대 남성에서 이탈 조짐은 뚜렷하다. 50대 남성과 비슷한 수준에서 지지 의사를 보였다. 이밖에 많은 경제 지표가 바닥을 기고 있다. 20년 집권은커녕 당장 몇 년 뒤를 기약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불과 수 개 월 만에 벌어진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20대 이탈과 데드크로스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는 허다하다. 지지율 하락도 문제지만 내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20대가 등을 돌린 이유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믿었다. 그런데 곳곳에서 믿음은 깨졌다.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애국심에 호소했다. 하지만 국가주의는 먹히지 않았다. 그동안 땀 흘린 선수들이 배제되는 불공정은 용인되지 않았다.

정규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연장선상에 있다. 자신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규직으로 바뀌는 불공정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 서울교통공사 세습 고용 의혹과 양심적 병역 거부, 여성 우대 정책은 20대 남성을 벼랑 끝으로 내 몰았다. 남자로 태어난 게 멍에가 되는 현실에 대한 울분은 한계에 달했다.

결국 지지율 하락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오만에 기인한다. 지지율 하락을 단임제 대통령제 아래서 반복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경제 문제로만 국한하는 것도 안일하다. 일방통행 정책 추진에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오만함에 대한 경고다. 그동안 여러 사건이 발생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김태우 특별감찰관 사건은 단적인 사례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오히려 어설픈 감성적 대응으로 화를 키웠다.

조국 민정 수석 책임을 거론한 조응천 의원은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됐다. 조 의원은 “공직자는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며 사퇴를 공론화했다. 하지만 허공으로 흩어졌다. 오히려 민주당 의원들은 “촛불 정권 상징”이라며 떼를 지어 조 수석을 엄호했다. 이해찬 대표까지 가세했다. 국민 정서와 괴리된 낮 뜨거운 행태다. 반향실(echo chamber) 안에서 끼리끼리 진영논리가 지지율 하락을 추동했다. 차관급 16명을 바꿨지만 핵심을 짚지 못한 인사다. 차관들이 잘못해서 민심이 이탈한 게 아니다. 정작 책임질 사람들은 놔둔 채 애먼 차관들만 바꿨다. 거꾸로 문책해야 할 청와대 비서관 3명은 차관으로 승진시켰다. 국민들 눈에는 오만한 인사로 비춰질 뿐이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몰락’에서 역사상 강대국, 즉 제국을 분석했다. 로마, 페르시아, 몽골, 스페인, 영국, 네델란드가 어떻게 강대국 반열에 올랐고, 무엇 때문에 몰락했는지를 추적했다. 관통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개방’과 ‘관용’이다. 개방은 쓴 소리를 받아들이는 열린 생각이다. 관용은 자신에게 엄격할 때 의미가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이제라도 반향실에서 나와 무엇이 문제인지 돌아봐야 한다. 또 분명하게 책임을 묻고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해야 한다. 애꿎은 차관을 속죄양으로 삼을 일이 아니다. 정작 책임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은 청와대에 있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결연한 행동이 있을 때 위기는 기회가 된다. 그럴 때 데드크로스를 골든크로스로 뒤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