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발견]31. '할 수 있다'는 긍정, 그리고 절망
2019-01-07 06:42
한병철 '피로사회'
최근 한 정신과 의사가 진료하던 도중 조울증을 앓고 있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질환자 범죄는 2932건으로 2011년 2120건과 비교해 7년 새 40% 가깝게 늘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공포감이 퍼지고 있습니다. 혹시 내 주변에 있는 정신질환자가 갑자기 사고를 일으키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입니다. 이에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문제는 단순한 처벌 강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숫자만 보면 범죄가 많이 늘어난 듯하지만 실제로 일반인이 저지르는 범죄율보다는 여전히 크게 낮습니다. 따라서 당장 처벌이 아닌 관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우선 왜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늘어나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현대인들은 성과주의 속에서 모두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해야 한다(have to)'가 핵심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이 전부였습니다. 이에 반해 지금은 '할 수 있다(can)'가 사회를 지배합니다. 정해진 몫이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닿는 대로 성과를 내야 합니다. 이 긍정성의 과잉이 자기 자신을 극심한 피로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결국 스스로 정한 목표를 충족하지 못해 절망감과 우울증에 빠지고 있는 셈입니다.
성과주의의 덫은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따라서 피로를 관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스스로 이를 관리할 수 없다면 국가나 주변에서 이를 도와야 합니다. 피로를 관리하지 못하면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