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재용 만난 뒤 "삼성 잘 안다"며 반색…나는 투명인간 취급

2019-01-02 08:08
[황호택이 만난 사람 ①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김정은 위원장 답방은 꼭 실현된다…그 뒤에 트럼프와 만날 것
급진정책 추진 부작용 한꺼번에…경제 망가지면 재집권 어려워
일탈 행위 처벌하면 될 일…조국 물러나면 사법개혁 물 건너가
박근혜당 창당되면 한국당 분열…野 재편 손학규가 불씨 제공

박지원 의원은 원내대표를 세 번이나 역임해 ‘정치 9단’이라는 평을 듣지만 남북관계에서도 그만큼 정통하고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2000년 싱가포르 비밀회동을 통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그에 대해 북한에서 여전히 관심이 높다. 지난 11월 18, 19일 금강산 관광 20주년 기념식 때도 이택건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금강산 호텔에서 두 번이나 비밀회동을 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신년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답방,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 간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년 4개월 뒤의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도 부산하게 움직일 전망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리라고 생각하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신변 안전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다. 당시에 참모들도 반대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위스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개방적인 성격이다. 답방 자체가 역사적 이벤트고,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인들에 비핵화를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나도 약속을 지켰으니 당신도 약속 지키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도 올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질문지를 보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답변이 술술 나온다. 아침에 조간신문 13개를 들춰보며 중요한 기사는 다 읽고 나온단다.

그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낙관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한 번도 김 위원장을 비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년에 걸친 대선 캠페인 기간에 김 위원장을 만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고, 이걸로 노벨평화상을 받고 재선에 성공하려는 계산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일을 손익 개념으로 접근하는 세일즈맨이다. 나는 선(先) 서울답방 후(後) 북미회담 순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미국 국무부에서는 실무자끼리 합의한 뒤 정상이 논의하는 보텀-업(bottom up) 방식을 선호하는데, 북한은 정상이 먼저 합의하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을 고집해 대화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서 비핵화는 톱-다운 방식으로 결정됐다. 과거 북미 간의 모든 합의는 차관보급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실천 과정에서 깨졌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핵에 대해서 전문가급 이상의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빨려 들었다. 김 위원장이 ‘이렇게 비핵화할 테니 경제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 반응이 긍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합의문에 표기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차 평양 방문 때 선 (先)비핵화를 요구하니까 경제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하며 안 만나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 후 처음으로 날린 트윗은 ‘북한으로부터 더 이상 핵 위협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 물질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6·12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에는 북한이 핵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없다.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신뢰를 쌓아 비핵화한다’고 돼 있다. 핵실험은 중단됐고 특히 미국 본토 공격용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지금도 영변에서는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핵화는 3단계로 이뤄진다. 현재의 단계는 미사일 안 쏘고 핵실험 유예하는 것이다. 영변 핵시설 생산을 중단하고, 폭파하면 미래의 핵은 생산 안 되고, 핵 확산도 막는다. 그리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받는다면 동결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북한은 살기 위해 핵 개발했다가 이제 살기 위해 핵 폐기하는데 (미국은) 아무것도 안 해주고 북한만 핵 폐기하라면 김정은 위원장이 그렇게 하겠는가. 트럼프 대통령 시기에 핵물질 생산 동결까지는 이뤄질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까지에는 미국과 북한의 최고 핵 전문가인 해커 박사도 10년~15년 걸린다고 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박 의원은 김 위원장에게서 경제발전과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 때 나와 김 위원장이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김영철이가 이재용 부회장을 데리고 와 김 위원장에게 소개하더라. 그러자 김 위원장이 ‘내가 삼성 잘 안다’고 하면서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나는 쳐다보지도 않더라.”

필자가 “경제가 너무 안 좋다”며 경제 질문으로 돌리자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정했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붕괴했고 그렇다고 대기업도 안 되고 있다. 청년 실업도 늘고 있다. 지금 서울에 삼성전자부터 목포 중앙시장의 곰탕집까지 잘 된다는 집이 있나? 없다.”

-경제 문제의 근저에는 최저임금이 있지 않나?
“누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탈원전에 반대하겠나. 그렇지만 이 정책들을 급진적으로 하다 보니 부작용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문 대통령이 불과 며칠 전에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탄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은 내년도에 똑같이 인상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대통령 말 다르고, 장관 말 다르다. 2년 동안 실패한 경제정책은 바꿔야 한다. 경제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지, 왜 베네수엘라행을 타는가.”

한국은 1987년 이후 보수와 진보가 10년 주기로 정권교체를 했다. 다만 전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1년 까먹는 바람에 보수 10년-진보 10년을 거쳐 보수는 9년으로 그치고 다시 진보 정권이 시작됐다. 경제가 망가지면 진보 정권이 5년 만에 끝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방지하자는 거다.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문 대통령이 성공해야 하고, 진보개혁 세력이 재집권해야 한다.”

청와대와 검찰 6급 수사관이 싸우는 모양새다. 김대중 정부도 민정수석실 산하 사직동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청와대가 불법 민간인 사찰은 안 했으리라고 본다. 문 대통령의 성격상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통 사람들은 그게 익숙해서 늘 한다. 그러니까 김태우 수사관도 (민간 사찰) 했을 거다. 그러면 민정수석실에서 하지 말라고 하고 원대 복귀 시키든지 했으면 된다. 그런데 박형철 대통령비서실 반(反)부패비서관이 김 수사관의 승진을 위해 사찰자료를 검찰에 보내주었다는 것 아닌가. 어처구니 없는 실책의 책임을 져야 한다.”

-조국 민정수석은 잘못이 없는가?
“조 수석이 물러나면 사법 개혁이 물 건너간다. 일탈 행위는 철저하게 검찰이 수사해서 처벌하면 된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개혁이 우선이다.”
-역대 정권마다 사법 개혁하겠다고 하다가 몇 년 지나면서 흐지부지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문제는 좀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은 상당한 진척이 있다. 의원 입법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9개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그리고 정부가 발표한 게 있다. 그 10개를 비교하면 공통점이 많다. 그것만 합의 처리해도 상당한 진전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투쟁을 통해 요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회에서 논의할 예정인데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성사될 수 있다고 보나.
“국민이 거대 양당의 횡포에 대해서 싫어한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협치를 해보라는 것이 국민 요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수가 360명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나 경제 규모, 단원제를 고려했을 때 현재 300명이 많은 게 아니다. 아마 10% 증원하는 330명 선에서 국민들도 이해를 할 것이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내년 봄이 가기 전에 잘 해낼 것이다.”

-국민 의사를 반영해서 사표(死票)를 없애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원론으로 보면 옳지만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박근혜 연대’당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세력이 다시 살아나는 게 바람직한가. 결국 연동형의 덕을 보는 건 박근혜 연대와 정의당밖에 없지 않겠나?
“맞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의 경우, 50%의 지지 받고 의석을 90% 차지했다. 40%는 어디로 갔나. 독일의 녹색당과 일본도 공산당도 아무 문제 없다. 국회는 협치를 하고 연정의 길이 열리기 때문에 양당제의 폐해가 없어진다.”
 

박지원 의원과 황호택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장은영 기자]


-총선이 1년 4개월 남았다. 야권은 어떻게 재편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정계개편의 불씨를 제공할 것이다. ‘박근혜당’이 창당되면 한국당이 분열된다. 민주당과 민주평화당은 근본적으로 뿌리가 같지만 민주당의 부산·울산·경남(pk) 세력들은 평화당과 합당하면 영남에서 ‘도로 호남당’이 되기 때문에 못한다고 한다. 더 두고 봐야 한다. 모든 가능성은 다 열려 있다.”

양념 삼아 요즘 잠행하는 대권 주자들에 관한 전망을 물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에 대해서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 많이 배웠을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집념이 강해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얼마나 변했느냐가 가늠자가 될 거다”라고 말했다.
-정계 은퇴한 유시민 의원이 유튜브를 시작하겠다는데...
“벽오동 심은 우리가 짐작하는 거지. 지금은 안 한다고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이 극히 적다. 총선은 안 나오겠지만 대선은 나온다고 본다. 유시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적으로 친노 친문 아닌가.”.

그는 DJ 밑에서 최장수 당 대변인을 지냈고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도 지냈다. 그가 동교동에 입문했을 때 그쪽 사람들은 “우리가 감옥 가서 고생할 때
언론은 뭐했느냐”는 식으로 기자들을 대했다. 그가 DJ에게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도 기자들이 올 때까지 상륙작전을 늦추었다”며 대(對) 언론 관계를 바꾸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자 DJ가 “그 정신으로 해보라”며 대변인을 시켜 4년 3개월을 했다. 그가 내민 수첩을 들여다보니 언론사 인터뷰 일정이 촘촘히 들어차 있다. 12월 셋째주에 9번, 넷째주에 6번이다.

-21대 총선에서 다시 목포 시민의 심판을 받을 작정인가?
“16개월 후의 이야기를 벌써 할 필요는 없지만 (출마) 하려고 한다. 목포에서 12월 22일(토) 27개행사에, 23일(일)에는 15개 참여했다. 과거에는 나는 12년 빠지지 않고 금요일 지역구에 가서 월요일 서울로 돌아오는 ‘금귀월래(金歸月來)를 실천했다. 이번에 목포 예산도 약 1200억원 정도 증액했다.”
박 의원은 새해로 74세다. 한국은 정치인들이 조기 은퇴하는 편이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젊은 피도 좋지만 경륜 있는 정치인도 필요하다. 붉은색 코트를 입고 백악관에 들어가 트럼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올해 79세다.
박 의원은 47년을 함께 살던 아내와 10월 사별했다. 지금은 아내가 없는 집에 딸과 사위가 들어와 함께 산다. 가족에게 주려고 부부 앨범 10부를 만들었다. 부부 앨범의 제목은 ‘고마워’였다. 아내의 영정 사진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항간에는 ‘미스 전남’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친구들이 “전남에서 제일 예쁘다”는 의미로 한 말이지 실제로 ‘미스 전남’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마지막 질문에 “감옥에도 갔지만 정치 입문해서 후회해본 적이 없다. JP는 정치 9단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YS는 그 말을 못 들었다. 생존한 정치 9단은 박지원 하나밖에 없다”고 자부심에 찬 답변을 했다. 

                                                                           
인터뷰=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교수 
정리=장은영 정치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