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상생으로]②‘틀딱충’v‘이기주의자’…극한으로 가는 세대간 혐오

2019-01-01 17:30
세대 갈등
진학·취업·결혼 등 부모·자녀간 가치관 갈등 극대화
사회적 합의 통해 갈등 풀어가는 유럽 벤치마킹해야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ajunews.com]


갈등(葛藤)의 한자어는 칡나무(葛)와 등나무(藤)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그린다.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다. 이런 갈등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잖은 사회학자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이 한층 나아진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2019년 대한민국이 직면한 수많은 갈등은 과연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 ‘진통’의 과정일까? <아주경제>는 그 답에 대한 단초를 신년기획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를 통해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자기 생각을 가르치려고 드는 ‘틀딱충’과는 마주치기도 싫어요.”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나이가 많은 노인세대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고 했다. 틀딱충은 ‘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에 ‘벌레’를 합친 노인혐오 표현이다. 노인세대 역시 젊은 층과 마주하는 게 편하지 않다. 경기도에 사는 조모씨(75)는 “요즘 젊은 세대는 배려가 부족하다. 너무 자기 주장만 한다”고 불편함을 나타냈다.

◆소통 어려움·취업경쟁 시달려

세대 간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의 40.4%가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44.3%는 노인과 청·장년 사이에서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청·장년층에선 그 비율이 더 높았다. 무려 90.0%가 ‘노인과 소통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갈등이 심하다는 비율도 80.4%로 노인층보다 높게 나타났다.

노인돌봄에 대한 책임을 두고도 이견을 보였다. 노인세대의 68.1%는 노인돌봄의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64.9%)나 성인 자녀(49.8%)를 꼽는 사람은 이보다 적었다. 반면 청·장년은 국가·지자체에 책임이 있다(85.6%)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이어 노인 배우자(61.0%), 성인 자녀(57.6%) 순이었다.

세대 갈등이 가장 빈번한 곳은 가정이다. 부모와 자녀 세대는 기본적인 가치관부터 진학·취업·결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갈등을 겪기 일쑤다. 인천에 사는 박모씨(38)는 몇 년 전부터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산다. 박씨는 “중학교 때부터 특정 고등학교 진학을 요구하고 이후 대학과 직업, 결혼까지 본인이 정해 놓은 방향을 강요하는 부모님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명절은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폭발하는 기간이다.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성인남녀 927명을 대상으로 ‘추석 연휴 스트레스’에 대해 조사한 결과 54.3%가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특히 미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부모’(51.3%, 복수응답)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갈등은 다툼으로 이어졌다. 응답자의 33.3%는 명절에 가족이나 친지와 다툰 경험이 있었고, 다툰 상대는 역시 부모(41.1%,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

이런 갈등은 심한 경우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진다. 2000년 5월 경기도 과천에서 발생한 20대 대학생의 부모 살인 사건도 갈등이 부른 범죄였다. 범인은 당시 명문사립대에 다니던 둘째 아들이었다.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형과 둘째 아들을 차별 대우했다. 둘째 아들에게 서울대 진학을 강요했지만 합격하지 못하자 실패한 자식 취급을 했다. 이렇게 쌓인 갈등은 존속살인으로 발전했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 한해에만 ’가정 구성원 간 살인·폭행치사’ 사건이 86건 발생했다. 유형별로는 살인이 55건, 폭행치사·상해치사가 31건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는 가정 구성원 간 살인이 30건, 살인미수가 29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길어지고 있는 경제불황도 세대 갈등을 부추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3.2%로 전월보다 1.7%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1.3%포인트 떨어진 7.9%를 기록했다. 언뜻 보면 고용 지표가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체감 실업률이 공식 실업률의 2배를 넘는 것을 고려하면 실상은 더 심각할 수 있다. 청년고용 시장이 회복됐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전반적으로 학력은 높아졌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점이 꼽힌다. 여기에 세대 간 경합이 치열한 산업과 직능에선 고령자 위주로 채용되는 점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내기만’vs’받기만’…연금 갈등도 증폭

은퇴 후 주어지는 ‘연금’은 미래 세대간 갈등의 핵심이다. 출산은 급감하는데 고령화는 심해져 연금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고, 연금을 받는 사람은 많아지는 역상관 관계가 이전보다 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으로 국민연금을 받는 국민은 447만877명에 이른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증가한 것은 가파른 고령화 때문이다. 통계청의 ‘2017 인구주택 총조사’ 자료를 보면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711만5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했다. 유엔(UN)은 65세 인구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이후 불과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적으로 빠르다고 꼽힌 일본(24년)보다 7년이나 빠른 속도다.

고령사회 진입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국민연금 재정 고갈에 대한 우려가 계속해서 나온다. 젊은 세대가 열심히 낸 연금보험료가 부모나 노인세대 주머니만 채워주고 막상 본인들은 때가 돼도 받지 못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연금의 젊은 세대 부담률과 노인세대 수혜율 사이의 갈등이 가장 심각한 세대 갈등으로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인권위가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노인복지 확대로 청년층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는지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8%가 ‘그렇다’고 답했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동일 비율도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12월 국민연금에 기초연금을 결합해 월 100만원 안팎의 연금소득을 보장하는 방향의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놓았다. 공적연금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의 조정 범위는 40∼50%로 하고 내는 보험료율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9%를 유지하거나 최대 13%로 올리며, 기초연금은 30만∼40만원 범위에서 지급할 4개 방안을 제시했다. 그간 논란이 됐던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는 지급보장 명문화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계획이지만 즉시 거센 비판에 시달렸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대체율을 40%로 해도 보험료율을 17% 올려야 후세대가 큰 무리 없이 국민연금을 운영할 수 있다”면서 낮은 보험료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연금을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는 안은 10년 뒤에 연간 기초연금 소진액이 40조원에 달할 것“이라면서 “당장 우리 좋자고 젊은 세대에게 세금 많이 내라고 하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도 “국민연금 기금 고갈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는 방안들”이라며 4개 안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정부로서는 부담일 텐데 실질적인 노후보장에 이바지하는 방안이라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유럽처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독일은 연금 입법 과정에서 노조·기업·민간보험사 같은 이해 관계자들 의사를 반영했다. 또한 사회자문위원회를 운영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스페인도 정부와 노조가 긴밀히 대화하며 노·사·정 합의에 이른 뒤 전문가와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의회 토론을 거쳐 최종 입법을 추진했다. 영국 역시 연금개혁을 위해 전통적인 이해 당사자들과 공식·비공식 협의를 했다. 또한 일반 국민까지 연금토론에 포함하는 ‘숙의적 협의’ 과정을 거쳤다. 이는 연금개혁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데 이바지했다.

강병익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속가능한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통해 정확한 정보와 노후보장에 가장 강력한 제도인 국민연금의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연구위원은 “국회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영국 사례처럼 국민적 대화의 장을 통해 제도개선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