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익숙한 줄만 알았던 곳...그러나 알지 못했던 서울
2018-12-17 06:16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시 '풀꽃'-
삶의 터전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쩌면 서울의 면면은 풀꽃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유니크한 박물관, 그곳에서 맛본 ‘황홀’
유니크 베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연회나 회의, 만찬 등을 진행할 수 있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서울의 공간이다. 서울관광재단은 서울의 명소 76곳을 ‘유니크 베뉴’로 선정했다.
유니크 베뉴 전부를 둘러볼 수 없어 우선 ‘우리옛돌박물관’과 ‘한국가구박물관’에 들렸다. 훌륭한 전시 수준에 더해 경관까지 빼어난 곳이 바로 이 두 공간이다.
지난 2000년에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연 우리옛돌박물관은 개관한 지 15년이 지난 때 성북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북악산 자락 성북동의 언덕에 자리해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만8182㎡(5500여 평)에 달하는 박물관에는 1300여점의 석조유물이 전시됐다.
사대부 무덤에 세운 문인석을 비롯해 잡귀를 쫓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세웠다는 벅수, 동자석 등 다양한 모습을 한 조형물이 박물관 내외부 곳곳을 가득 채웠다.
박물관의 전시물의 절반 이상이 죽은 자의 무덤에서 가져왔단다. 어느 하나 똑같은 모습이 없다. 표정도 다양하다.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
옛돌박물관엔 석조물뿐 아니라, 규방 문화의 결정체인 전통 자수 300여점, 한국 대표 근현대 회화작품 150여점도 전시돼 있다.
야외 정원에 심어진 수목과 야생화는 계절마다 색색의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어 보는 이를 황홀케 한다.
옛돌박물관 인근에는 한국가구박물관도 있다. 자연은 가옥을 품었고, 그 가옥은 가구를 품었으며, 가구는 사람을 품은, 고귀한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가구가 재료별(먹감나무, 오동나무, 느티나무 등), 종류별(사랑방, 안채, 부엌 등), 지역별 특성에 따라 분류·전시됐다.
1995년부터 약 15년간 궁과 사대부집, 곳간채와 부엌채 등 한국의 전통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가옥 10채도 그대로 옮겨놓았다.
가구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쓸모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 재료, 소반의 크기와 가구의 높이가 다른 이유 등 가구에 얽힌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지니 감상의 깊이가 한층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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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 들어서 “앉아보라”는 자리에 살포시 앉아 가구를 바라보고, 창을 열어 밖을 내다볼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직접경험만이 가구박물관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삶과 죽음의 사이···묘지, 훌륭한 인문학 여행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개장해 1973년까지 4만7000여 기(基)의 무덤이 들어선 후 만장(滿葬)에 이르렀던 망우리 공동묘지는 현재 7500여 기의 무덤이 남았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가던 이들의 애달픈 삶, 이젠 과거의 역사가 되어버린 그 세월의 기억이 망우리에 함께 묻혔다.
망우리 공원의 묘지의 숲을 걸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중랑구는 2017년, 공원에 ‘사잇길’을 조성했다. 어제와 오늘의 사이, 고인과 나의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를 걸어가는 이 길이야말로 역사와 철학이 어우러진 훌륭한 인문학 여행지가 아닐까.
망우리 묘지공원 외에 '초대(初代)길'이 강북구 수유동에 있다. 최초의 검사부터 초대 국회부의장, 초대 대법원장, 초대 부통령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에 ‘초대’ 직위를 지낸 이들의 묘역이 도보 코스로 이어져있다.
조금 내려가면 독재의 횡포와 부정에 항거했던 418명의 민중이 잠든 국립 4·19 민주묘지가 있고 그 안에는 이러한 과정을 여러 기록으로 남겨놓은 기념관도 있다.
◆음식으로 서울을 더 가깝게···가스트로 투어
유니크한 박물관, 깨달음을 주는 인문학 여행지에 더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일이다.
미식투어는 미국의 시카고, 뉴욕과 스페인, 유럽이나 호주 등에서는 일반화된 여행 테마지만 우리나라에선 생소하다. 한상 차림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음식문화 때문이리라.
다행히 맛있는 음식을 시식하며 돌아다니는 도보여행 프로그램 '서울 가스트로(Gastro) 투어'가 있다.
한국의 음식문화뿐 아니라 서울의 역사·문화까지 알아갈 수 있다.
강태연 서울 가스트로 투어 대표와 함께 청춘의 열정이 뭉친 대학로, 그곳에서 떠오르는 맛집 '순대실록'과 '핏제리아 오'를 찾았다.
순대실록의 육경희 대표는 국내외 골골샅샅을 다니며 가축의 고기와 피, 내장이 순대란 음식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꼼꼼히 취재했고 점포명과 동일한 저서 '순대실록'도 펴냈다. 점포 위층에는 연구소를 두어 순대를 연구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이국적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 '핏제리아 오' 이진형 대표는 72시간 숙성시킨 도우를 485도의 참나무 화덕에서 1분 내에 구워낸다. 정통 나폴리 피자는 고온의 화덕에서 짧은 시간에 구워내야 쫄깃함을 느낄 수 있다고.
메트로 피자는 엔초비와 치즈를 듬뿍 올리고, 다른 한쪽은 마르게리타 피자, 루꼴라와 프로슈토(이탈리아식 생햄)로 토핑을 마무리해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메트로 피자를 예약 주문하면 핏제리아와 연계된 지역센터에 기부하는 ‘1+1 메트로 피자 기부’ 프로그램도 마련해 지역에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