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이번 유가하락은 호재다
2018-12-11 15:36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국제유가가 10월부터 약세로 돌아섰다. 서부텍사스유(WTI)는 10·11월 각각 11%와 22%가량 내렸다. 단숨에 10월 고점보다 30% 이상 빠진 것이다. 80달러를 넘보던 유가는 이제 50달러 초반까지 내려왔다. 세계 경기 둔화가 수요 측면에서 원인을 제공했다. 공급 측면에서도 미국 원유 재고 증가와 정치적 변수(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공조)가 유가를 끌어내렸다.
국제유가는 당분간 50~60달러 범위에서 움직일 공산이 크다. 수요가 빠르게 살아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유가 하락폭이 크게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셰일업체 손익분기점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목표유가를 고려해야 한다.
원유는 원자재 가운데 경기에 가장 민감한 위험자산이다. 그래서 유가 하락은 주식시장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때그때 달랐다. 유가가 경기를 반영하면서 수요에 따라 움직이면 주가도 유가와 나란히 오르내렸다. 반면 공급이 유가를 좌우할 때에는 주가와 유가 간 상관관계는 낮아진다. 경기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기업활동 비용을 늘리거나 줄이는 재료로 보아서다.
올해에는 수요보다 공급이 유가를 움직였다. 미국이 이란을 제재하는 바람에 공급 감소 우려가 커졌다. 10월 이후에는 미국과 사우디가 나란히 저유가를 지지하는 쪽에 섰다. 이는 OPEC 회의에서 감산을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낳았다. 유가가 가격대를 차례로 낮추면서 추락한 이유다. 올해 주가와 유가 간 상관관계도 실제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상반기 유가가 올랐을 때에도 경기보다 공급이 더 크게 작용했고, 기업에서는 비용이 늘었다.
10월 이후 유가 하락은 원유수입 비중이 큰 국가에는 비용절감이라는 단비가 될 것이다. 가격(P)과 물량(Q)이 제한적인 거시환경에서 비용(C) 감소는 기업 이익을 개선해주기 때문이다. 주요 신흥국 가운데 우리나라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원유 순수입 비중이 큰 편이다. 나라별로는 2017년 기준 태국(4.3%)과 한국(3.9%), 인도(2.6%) 순으로 이 비중이 높았다. 원자재 가격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비용감소 효과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 하락은 미국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준다. 앞으로 국제유가가 50~60달러 수준에 머문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내년 유가 등락률은 전년 대비로 보았을 때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근거 가운데 하나인 물가상승 압력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구성하는 항목 가운데 가장 큰 가중치를 차지하는 주거비 상승세도 꺾였다. 더는 미국 연준이 매파적인 입장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얼마 전 뉴욕 이코노믹클럽 강연에서 "금리가 중립금리로 추정되는 범위 '바로 밑(just below)'에 있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두 달 전쯤만 해도 "'먼 거리(long way)'에 있다"고 얘기했었다. 파월 의장이 말을 바꾼 기간에 일어난 일이 유가 하락과 전 세계 자산가격 추락이다.
자본 흐름 역시 주목해야 한다. 유가가 떨어지자 신흥국 주식형 펀드로 들어오는 돈이 많아졌다. 이번 유가 하락은 비용부담 완화와 미국 통화정책 변화를 기대하게 만들었고, 조정을 받아온 신흥국 주식시장을 되돌아보게 했다. 물론 신흥국 증시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이르다. 그래도 예상외로 낮아진 유가 수준은 신흥국이 바닥에 다가섰다는 인식을 자극하고 있다.
게다가 미·중 무역분쟁은 90일 동안 휴전 국면으로 진입했다. 양국은 확전을 자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지는 미·중 무역분쟁이 세계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 기간 원유수입 비중이 높고, 미·중 무역분쟁으로 큰 타격을 받았던 신흥 아시아, 그 가운데 우리나라와 중국 증시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