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 칼럼] 창의적 남북경협 전략과 중국의 교훈

2018-11-21 05:00
북한 경제특구 특징과 목적 분석 必...'인프라' 국한 사고 벗어나야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국제정치학]



올 들어 북한의 잇따른 정상외교로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이 불었다. 훈풍을 따라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동반 상승했고,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완화 호소 노력도 가중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진전은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넋 놓고 마냥 기다려서는 안 된다. 기다리는 동안 나름대로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경협이 재개되면 그냥 북한에 진출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우리 민족끼리’ 잘 해낼 수 있다는 안일한 사고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기에 무리한 요구는 없을 것이고 설령 잘못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한 상태다. 그러나 정글처럼 질서와 제도를 갖추지 못한 북한 시장에 이러한 생각으로 접근하면 백전백패가 자명하다.

경제적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남북경협의 비용만 더 늘어날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면 ‘퍼주기’식 경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될 것이다. 우리의 혈세를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다면 북한 경제 발전계획과 관련해 보다 철저한 분석과 연구가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러한 노력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북한이 선포한 경제특구나 개발지역의 성격, 특징에 대한 연구물을 찾기 어려운 것이 이 같은 사실의 방증이다. 현재 북한에는 27개의 경제특구가 설정된 상황이다. 이 중 김정은 시대 이전에 지정된 특구가 5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국가급 특구가 5개, 지방정부급 특구가 17개 지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들 특구의 지정 배경, 발전방향과 계획 등이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북한이 이들 지역을 어떻게 특성화할 것인지를 우리는 모른다는 의미다. 아니 알고자 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북한이 시장개방 또는 남북경협을 재개하면 '우리가 진출한다'는 사명감만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 정부의 대북경협 사업계획은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에만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국가개발사업에서 SOC의 구축도 물론 중요하다. 특구와 특구를 연계하거나 특구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출로를 이어주는 도로, 항만, 철도의 유통 및 물류망 구축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반드시 이것이 우선시될 필요는 없다. 혹자는 현재 대북제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북한 경제특구의 발전계획과 특징에 대한 더 철저한 분석으로 우리 기업 진출을 보다 효과적·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질적으로 이를 행동에 옮기고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또, 북한의 경제특구를 특성화하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북한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특구의 지리적 특징을 감안한 특성화를 추진 중이다. 일례로, 양국은 황금평과 위화도 개발 사업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이 지역을 특성화자는 논의를 진행해왔다. 북·중 양국은 협의를 통해 ‘황금평·위화도 운영위원회’를 조성하고 황금평을 정보기술(IT)산업 기반의 지식밀집형 신흥경제구역으로, 위화도는 관광·문화와 현대화 농업 및 경공업 육성 개발구로 지정했다.

경제특구의 '성격'을 결정한 후에야 산업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 문제를 논의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자국의 개발은행을 통해 30억 위안(당시 약 5억 달러)을 투자하기로 하고 자국 기업 투자 유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30억 달러의 대북투자펀드 조성도 결정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 사업은 투자 수익을 즉각적으로 환수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국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초기 투자의 80% 이상 손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에 따라 북한이 지정한 특구에 무작정 진출한다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이들 특구의 지리·환경적 특징을 면밀히 살핀 후 우리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주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심지어 북한과 수차례의 고위급 사전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진출 계획을 마련한 중국도 아직 경제특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북핵 제재와 북한 내부의 정치적 결정 등이 그 이유로, 중국의 북한 경협사업은 개별 기업 차원에 국한된 상태다. 국가 차원의 북한 경제특구의 개발 사업은 대북제재가 해제된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 경제특구에 대한 심층적 분석 등 준비 없이 대북제재 해제만을 기다려왔다. 이렇게 수수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하면 우리에게 대북제재 해제에 따른 남북경협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의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초기 투자가 거듭 실패해 국민의 세금 부담만 늘어나면 '통일비용'에 대한 반감만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우리는 대북투자와 남북경협이 한반도 통일 비용의 사전 감축을 위한 전초 작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서 강조했듯이 사전에 북한의 경제특구 지정 배경과 목적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국가개발사업의 성공 경험이 있는 우리가 각각의 특구에 적합한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특구 개발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보다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접근 전략도 필수다. 인프라 조성이면 된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매몰돼서는 안 된다. 북한의 경제발전과 한반도 통일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