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애매한 메시지…무역전쟁 '자충수' 되나
2018-11-05 17:50
美 요구 일부 수용, 항전 의지는 지속
불확실성만 가중, 트럼프 선택에 관심
불확실성만 가중, 트럼프 선택에 관심
"5000년의 고난을 겪고도 중국은 여전히 여기에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5일 상하이 국가회의전람센터에서 열린 국제수입박람회 개막 연설 말미에 이같이 말한 뒤 "중국은 모든 도전을 이겨내고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사를 생중계하던 중국 관영 CCTV의 사회자는 이 대목을 반복해 언급하며 "시 주석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구절(金句)을 남겼다"고 극찬했다.
일각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시 주석이 미국을 배려하는 듯 하면서도 항전 의지를 거두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무역전쟁의 향방에 불확실성만 더해졌다.
시 주석은 연설을 시작하며 "지난해 5월 수입박람회 개최를 선포한 뒤 준비 기간을 거쳐 드디어 개막하게 됐다"고 말했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대규모 수입 확대에 나선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대외개방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시 주석은 5가지 개방 확대 방향을 제시하며 "관세와 통관 비용을 추가로 인하하고 국경을 넘는 전자상거래 등 새로운 분야의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통신·교육·의료·문화 등 영역의 개방 수준을 높이기로 했다. 시 주석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교육과 의료 등 분야의 지분 투자 제한을 낮추겠다"고 말했다.
서비스 시장 개방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내용이다. 향후 15년간 서비스 수입 규모를 10조 달러로 늘리기로 한 것은 이같은 요구를 반영한 조치로 해석된다.
세계 일류 수준의 경영 환경을 조성하고 외자 기업을 중국 기업과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특히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논란을 의식한 듯 "지식재산권 심사 역량을 강화하고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 위법 행위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다만 "경영 환경은 더 나은 게 있을 뿐 가장 좋은 건 없다"며 "각국이 스스로의 경영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첨단 부품의 대중 수출을 제한하거나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막는 미국 측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시 주석이 "디지털 경제와 인공지능(AI), 나노기술 등 첨단 영역의 협력을 강화하고 신기술 신산업 신모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를 막으려는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밖에 시 주석은 상하이 자유무역 시험구 확대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가속화 등 다수의 시장 개방 정책을 소개했다.
◆中 경제는 큰 바다, 뒤집히지 않는다
무역전쟁 발발 초기부터 미국이 꺼내들었던 카드를 일부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양국 간 협상 재개를 기대할 만한 전향적인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대미 항전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이 수차례 등장했다.
시 주석은 "중국 경제는 작은 연못이 아니라 큰 바다(大海)"라며 "바다는 평온할 때도 있지만 광풍과 소나기가 몰아칠 때도 있는 법"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광풍과 소나기는 연못을 뒤집을 수 있지만 바다는 뒤집을 수 없다"며 "무수히 많은 광풍과 소나기 속에서도 바다는 의연하게 그곳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분을 말하는 시점에 시 주석은 미소를 띠며 여유로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 주석은 "우리가 전략적 신념을 유지하고 개혁개방과 공급측 개혁을 추진한다면 각종 모순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 경제는 반드시 질적 발전의 궤도로 들어설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중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5%로 둔화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앉았지만 시 주석은 "경제가 합리적 구간에서 운용되고 있다"고 강변했다.
미국에 고개를 숙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만큼 미·중 무역 협상은 난항을 지속할 공산이 커졌다.
이제 관심은 미국 중간선거로 향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간선거에서 어떤 성적표를 손에 쥐느냐에 따라 무역전쟁 판도가 또 한번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도 중간선거 결과를 반영해 무역전쟁 전략을 재수립할 수 있다"며 "이달 말로 예정된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동 전까지 양국의 수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