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해운UP] "관료주의가 망친 해운업...'프로페셜널리즘' 갖춰야"

2018-10-24 06:00
금융위·해수부, 한진사태 책임전가
전문집단 중심 재건계획 재검토해야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사진 제공= 현대상선.]


"국내 해운업은 과거 공무원들의 '실책' 탓에 무너졌다. 현 정부의 '해운 재건 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해운업계 고위임원은 해운업의 현 상황을 이같이 꼬집었다. 과거 해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정부의 실기에서 현 위기가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세계 7위였던 한진해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나마 살아남은 현대상선은 여전히 수조원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난간에 선 해운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 당시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내린 과정을 되짚고, 보다 정확하고 전문적인 경제·산업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특히 해운 구조조정에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업계 및 관료, 연구기관 등 전문집단을 중심으로 해운재건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국내 해운업 붕괴는 무능한 관료 탓··· 보다 전문적인 경제·산업정책 필요"
지난해 초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 각국 참석자들은 한국 정부가 왜 한진해운을 파산시키고 당시 15위였던 현대상선을 살리기로 결정했는지 물었다. 하지만 우리 측 참석자들은 이에 대해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못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해운업계 관계자는 "당시 업계 내에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박근혜 정부에 미운 털이 박힌 게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얘기가 파다했지만 이를 차마 말할 수 없었다"며 "그만큼 당시 정부의 결정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로 인한 대가는 엄청났다. 글로벌 해운조사기관 피어스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상선의 북미항로 점유율은 5.47%로, 7.4%에 달했던 한진해운의 몫을 약 1% 포인트 가져오는 데 그쳤다. 나머지는 유럽·중국 등 해외 선사들이 나눠 가졌다는 얘기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을 살리는 데는 대규모 정부 자금이 투입될 필요도 없었고, 단지 6000억원의 지급보증만 했어도 충분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혈세 2조원이 넘게 들어가는 현대상선을 살리는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했고, 이후 현대상선은 매년 5000억원씩 손실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을 예견해 정부에 한진해운 지원을 촉구했지만 묵살됐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대주주의 자구노력 없이 추가 지원은 없다"는 원칙론만 앞세웠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도 "구조조정은 금융위원회가 할 일"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했다. 청와대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세계 1~3위인 머스크, MSC, CMA-CGM는 각국 정부의 금융 지원을 등에 업고 401만TEU, 325만TEU, 263만TEU급 선복량(적재능력)을 갖춘 '공룡 선사'로 거듭났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해운업 재건'에 성공하기 위해선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전문가 영입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했을 때 사태 수습을 해운전문가가 아닌 금융전문가들이 했고, 정부는 적절한 정책결정을 못한 채 우유부단했다"며 "해운업계의 많은 인재들이 주도적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도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집단 중심으로 해운재건 계획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현재 정부는 컨트롤 타워인 해양진흥공사를 통해 선박 신조(新造)를 지원하는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최근 현대상선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선 '지원 일색'인 정책은 자칫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2017년 기준 301.6%로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반면, 실적 회복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도 지난 8월 "2020년 2분기는 돼야 흑자전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출할 곳도 늘고 있다. 앞서 2016년 현대상선은 채권단 자율협약 당시 2019년 말까지 용선료를 20~27% 정도 인하 조정 받았는데, 환원까지 불과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특히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발주에 들어간 약 3조원 중 일부도 현대상선이 부담해야 한다. 관련업계에선 약 10%인 3000여억원을 현대상선이 투자하고, 나머지 90%는 정부가 보증과 정책 금융 등을 통해 지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무 상황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란 얘기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업, 특히 원양선사를 재건하기 위해 현대상선을 지원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이익이 발생하지 않고 고정비가 늘어가는 회사에 아무런 대책 없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혈세 낭비"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해운사 간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있다. 선대를 대형화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해수부는 선사 간 통합 과정에서 유동성이 부족할 경우 1000억원을 투입하고, 추가 자금이 필요하면 연료비, 인건비 등을 긴급 지원하는 당근책을 내놨다. 현재 통합을 추진 중인 근해 선사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이 실수혜자다.

하지만 이후 합병 논의는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태다. 기업들 상당수가 '합병'에 반감이 있는 만큼, 실제 추진을 위해선 대책을 보다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부실자산이나 부채부분을 떼어내고 정상적인 자산 및 부채만을 인수하는 '자산부채이전(P&A)' 방식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아니면 공동운항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글로벌 해운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외과수술 경험이 없는 일부 해운 관료들이 구조조정을 전담하는 것은 오히려 부실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제라도 해운 구조조정에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해운 업계 및 관료, 연구기관의 의견을 반영해 해운재건 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아가 해운구조조정의 첫단추를 잘못 꿴 박근혜 정부의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해양수산부, 산업은행의 고위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책임추궁을 해야할 것"이라며 "그래야만 왜곡됐던 해운정책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