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지피지기] 성과 이름을 수시로 바꾸는 실용주의 민족, 베트남

2018-10-18 03:00
"호찌민, 이름은 174개...독립운동 당시 형벌 피하기 위해"
"아이 평안 위해 사당·사찰에 입양시키면서 개명하기도"
"오랜 전쟁 속 보복 회피·위인 숭배 목적도...중요한 문화"

[안경환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조선대 교수)]


한국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평생을 소중히 여기고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했다. 본명은 임금이나 스승, 부모만이 부를 수 있었다. 대신 어릴 때는 아명을 사용했고, 장성해서는 ‘자’나 ‘호’를 사용했다. 뼈대 있는 집안에서는 부모도 자식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이름을 중요시하는 민족이었으니 부모가 물려준 성씨를 바꾼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 사당 등에 입양시키는 '반코안'·보복 회피 등 개명 이유 다양

반면 베트남에는 필요에 따라 성과 이름을 수시로 개명하여 시용하는 특이한 문화가 있다. 베트남에서 성과 이름을 바꾸는 사유는 여러 가지다. 가까운 예로 호찌민 주석이 있다. 그의 본명은 응우옌신꿍이다. 성이 '호(胡)씨'가 아니라 응우옌(阮)씨다.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형벌을 피하기 위해 때와 장소가 바뀌면 성명을 개명했다. 호찌민 주석은 평생 174개나 되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역신이 자식을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다분히 미신적인 두려움에, 계약에 의거해 사당이나 사찰에 팔아넘기는 예를 올리고 자식을 입양시키는 문화도 있다. 성인(聖人)이나 부처의 자녀로서 해를 받지 않고 성장하도록 자녀의 양육을 위탁하는 것이다. 이것을 반코안이라고 한다. 만약 베트남의 민족 영웅 쩐흥다오 장군의 사당에 반코안하면 쩐(陳)씨로 바꾸었다. 아이가 12세에 이르면 다시금 자식을 되찾는 예를 올리고 생가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산다.

전제군주제 하에서는 왕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강압에 의해 성을 변경하는 사례도 있었다. 왕이 공신들에게 자신의 성씨를 하사하는 퐁꾸옥띤(封國姓)과 공적에 따라 성씨를 하사하는 사성에 의한 변경도 있었다. 지리적으로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남북 분쟁기가 많아 분쟁이 끝나면 늘 보복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복을 피하기 위하여 성씨를 바꾸는 사례가 많았다.

중부 베트남의 꽝응아이 성의 소수 민족들은 1960년 이전에는 '딘(丁)씨'였으나,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된 뒤에는 거의 '호(胡)씨'는 또는 '팜(范)씨'로 개명했다. 이는 호찌민 주석을 숭배하기 위해서, 또 *팜반동 수상과 고향이 같다는 이유에서 성을 변경한 것이다. 일종의 위인 숭모에 의한 성의 변경인 것이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외부침략이 많았고 남북간의 분쟁도 많아 명예보다는 생존을 우선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기에, 생존을 위해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성씨도 편의에 따라 바꾸는 실용주의를 우선시 하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베트남 사업에서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문화적 요소다.

* 팜반동(Phạm Văn Đồng) : 베트남의 정치인이자 공산주의 사상가다. 반(反)프랑스 독립운동가로 호찌민 주석과 함께 활약했다.



※ [안경환의 지피지기]는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이자 베트남 하노이 명예시민인 안경환 조선대 교수가 수십년간 베트남을 오가며 직접 보고 느낀 베트남의 실제 모습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