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4.0, 기업보다 브랜드(상)] '잘 키운' 브랜드, 기업 가치 '쑥'

2018-10-16 09:29
주요 대기업, 연구개발에만 2~3년 소요…대박 브랜드, 기업 가치 저절로 키워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이 현실화되고 있는 유통 4.0 시대, 유통 기업과 소비자 간 접점은 한층 가까워졌다. 이 시기와 맞물려 소비자들은 기업의 인지도보다는 제품의 본질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도 사명을 앞세우기보다 자사만의 차별화된 브랜드 개발과 마케팅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3회에 걸쳐 국내 유통 기업들의 ‘파워 브랜드’ 키우기 전략과 현황을 알아본다. <편집자 주>
 

국내 주요 유통기업들의 자체브랜드(PB).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롯데마트 ‘온리 프라이스’, 이마트 ‘노브랜드’, 홈플러스 ‘심플러스’, 현대백화점 ‘원 테이블’. [사진=아주경제 DB]


#대기업 브랜드 매니저인 유모 과장(37)은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오랄비 칫솔로 이를 닦고 질레트 면도기로 수염을 정리한다. 요즘 탈모가 걱정되는 차에 구입한 TS샴푸로 머리를 감은 뒤 바디샵 모링가 샤워젤로 샤워를 마친다. 우르오스 올인원 스킨로션을 챙겨 바른 뒤, 신세계 분더샵에서 구매한 정장과 와이셔츠에 톰브라운 넥타이를 매치한 뒤, 투미 백팩을 메고 페라가모 스니커즈를 신고 출근길에 나선다. 오후 외근 중에는 갤럭시 노트9으로 통화와 검색을 반복했고, 퇴근 후 집에서 피코크 훈제오리 가정간편식에 클라우드 한 캔을 곁들여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다. 이후 애플 맥북으로 구독 중인 유튜브 영어강의와 고프로 사용법 등을 챙겨 본 뒤, 시몬스침대에 몸을 누이고 이내 잠이 든다.

김 과장의 하루에서 엿볼 수 있듯, 우리는 매 순간 브랜드와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혹자는 ‘브랜드가 바로 우리 삶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브랜드를 영위하느냐, 못 하느냐로 인해 개인의 행복지수가 달라진다는 이도 있다. 브랜드야말로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업들도 이제 사명(社名)보다는 브랜드 알리기에 더 큰 에너지를 쏟고 있다. 국내외 기업 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파워 브랜드’를 만들어내면, 충성도 높은 고객들 덕에 기업의 실익이 높아짐은 물론 이미지 제고에 효과적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접점이 많은 유통 대기업들이 앞다퉈 ‘브랜드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이들 기업은 특정 브랜드 개발을 위해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에 걸쳐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브랜드 최종 론칭까지 전 사업부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 TF가 꾸려지면 말단 사원부터 CEO까지 오랜 기간 연구개발에 힘쓴다”면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메가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탄생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신세계의 경우, 이마트의 가성비 높은 PB(Private Brand) ‘노브랜드’가 메가 브랜드로 성장했다. 높은 가성비 덕에 노브랜드 제품의 매출이 연일 높아지자, 이마트는 2016년 8월 아예 노브랜드 전문점을 출점했고 올들어 100호점까지 돌파해 전국 곳곳에 출점한 상태다. 문제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다 보니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자 이마트는 노브랜드 상생TF를 꾸려 지역 전통시장과 협조해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까지 내는 역발상의 성공을 이뤄냈다.

롯데도 이에 질세라 1000원 단위 균일가를 모든 제품에 명시한 PB ‘온리 프라이스’를 지난해 10월 공식 론칭했다. 대형마트가 수시로 할인 행사를 하면서 무너진 정상가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워 점차 세를 확장하고 있다. 홈플러스 또한 가성비 높은 PB ‘심플러스’를 론칭, 노브랜드와 온리 프라이스를 추격하고 있다.

CJ는 한식 브랜드 ‘비비고’를 앞세워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비비고는 당초 한식 전문점으로 글로벌 확장을 꾀했지만, 품이 많이 드는 전문점 대신 만두·육개장 등 제품 자체를 앞세우는 전략으로 대표 한식 브랜드로 입지를 다진 상태다. 이재현 회장이 직접 챙기는 PGA투어 정규대회인 ‘THE CJ CUP@NINE@ BRIDGES(더CJ컵)’에도 메인 스폰서로 참여, 해외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국내외 브랜드 간 무한 경쟁 시대다. 자사 고유의 브랜드, 소비자의 마음에 각인될 수 있는 파워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면서 “이제 피코크를 사기 위해 이마트로, 온리 프라이스를 사기 위해 롯데마트로 가는 것이지, 무슨 마트냐가 중요한 세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식음료 업계 관계자도 “bhc 치킨을 운영하는 회사가 외국계 사모펀드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고, 사실 궁금해하지도 않는다”면서 “칠성사이다, 코카콜라처럼 오랫동안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 하나만 생기면 그 기업의 가치와 이미지는 자연스레 쑥쑥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