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만에 무죄 이수근 누구? 북한 고위 언론인, 1967년 귀순… 위장간첩 누명쓰고 처형
2018-10-12 00:01
과거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위장간첩 누명을 쓰고 처형된 이수근씨가 49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12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지난 1969년 사형이 선고된 이씨의 재심에서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공문서 위조 및 행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일부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내렸다.
북한 고위 언론인(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출신인 이씨는 1967년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다. 그 해 3월 22일 오후 5시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군사정전위원회가 끝난 뒤 유엔군 대표였던 밴 크러프트 준장의 승용차를 타고 북한 병사들의 총을 피해 남측으로 내려왔다.
그러다 1969년 1월 위조여권을 이용해 홍콩으로 출국한 뒤 캄보디아로 이동하다가 중간 기착지인 베트남에서 붙잡혔다.
당시 검찰은 이씨가 위장 귀순해 북한의 군사적 목적을 위해 기밀을 수집하는 등 간첩 행위를 한 뒤 한국을 탈출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재조사를 거쳐 당시 이수근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발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위원회는 2007년 "당시 중정 수사관들이 이수근씨 등을 불법 체포·감금하고 수사과정에서 물고문과 전기 고문 등 가혹 행위를 했다"며 "사실 확인도 없이 졸속으로 재판이 끝났고 위장 귀순이라 볼 근거도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검찰이 직권으로 청구해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이씨가 영장 없이 불법으로 구금됐고, 수사관들의 강요로 허위자백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또 "첫 공판이 열리기 전날 대공분실로 끌려가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고, 재판 당일에도 중정 요원들이 법정을 둘러싸 위압적 분위기를 조성한 만큼 당시 법정에서 한 진술도 강요된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지령을 받기 위해 한국을 탈출했다기보다는 처음 이씨가 진술했던 대로 너무 위장 간첩으로 자신을 몰아붙이자 중립국으로 가서 편히 지내며 저술 활동을 하려 했던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전했다.
다만 재판부는 홍콩으로 출국하는 과정에서 위조여권을 행사하고, 미화를 환전하고 취득신고를 하지 않은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낙인 찍히고 생명까지 박탈당하는 데 이르렀다"며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피고인과 유가족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