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고령사회와 지방소멸 ‘쓰나미’
2018-10-02 05:04
추석 연휴를 이용해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다녀왔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 참사를 겪은 아픈 곳이다. 당시 1만 5,894명이 숨졌고 2,562명이 실종됐다. 또 23만여 이재민들이 터전을 떠났다.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에 위치한 도호쿠 지방은 역사와 문화, 자연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히라카미(白神) 산지’와 세계 문화유산 ‘주손지(中尊寺)’를 비롯해 ‘도와타(十和田)’ 와 ‘다자와(田沢)’ 호수가 보석처럼 빛난다. 그 가운데 국가지정 특별 명승 및 천연기념물인 ‘오이라세(奧入瀨)’ 계류(溪流)는 압권이다. 도와다 호수부터 14km 계곡을 끼고 걷는 트래킹은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다.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원시림을 호흡한 체험은 아직까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센다이 공항에서 경차를 빌려 이와테(岩手), 아오모리(靑森), 아키타(秋田), 야마가타(山形) 4개 현(縣)을 돌았다. 잘 닦인 고속도로와 국도를 이용해 도호쿠 속살을 들여다봤다. 이름난 관광지와 온천 단지는 피했다. 대신 한적한 소도시와 산골 마을을 찾았다. 덕분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지방소멸과 고령사회라는 짙은 그늘이다. 아베노믹스라는 화려한 외피를 한 꺼풀만 벗기면 보이는 현실이다. 고령화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일본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은 27.3%다. 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노인이다.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 사회다. 일본은 이미 2007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50년 40%로 훌쩍 치솟는다. 이쯤 되면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노인뿐이다. 거리는 물론이고 재래시장, 백화점까지 노인들이다. 심지어 주행 차량의 60% 이상이 노인 운전자다. 이들이 일본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 주체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대도시는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호황이라지만 소도시는 회색빛이다. 명목 GDP 551조 엔, 일본의 현주소다. 급격한 고령화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또 세수는 감소한 반면 사회 보장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자녀세대 부담을 가중시킨다. 고령화 그늘은 대도시도 피해갈 수 없다. 혼자 죽는 고독사가 그것이다. 지난 해 일본에서 고독사로 숨진 사람은 3만 2,000여 명이다. 고독사 보험 상품이 나왔고 고독사 처리 업체도 성황이다. 도호쿠 지방을 여행하며 접한 고령화 사회는 두렵기 까지 했다. 이웃나라 일본만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초고령 시대에 걸맞은 고용 제도와 사회보장 개혁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머지않아 재앙이 될 노인 정책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고령화에 맞춰 미비한 사회안전망 강화와 함께 노인 일자리 창출, 재교육 시스템 구축이 관건이다. 고령화는 지방소멸과도 밀접하다.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떠난 뒤 지방을 지키는 이들은 노인이다. 도호쿠 지역에서 확인한 지방소멸은 인구 학자 논문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이들마저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 지방도시는 소멸될 게 분명하다.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는 우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30년 안에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소멸 위험에 처했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89개 지역이 해당된다. 조만간 40% 상당 지방이 사라진다는 것은 소중한 기억과 자산이 사라지는 우울한 일이다.
예견되는 국가적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곳이 국회다. 대한민국 국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추석 명절에 고령화 그늘과 지방소멸 위기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쟁에만 매몰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공개 예산정보 유출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대표적이다. 사우나 비용 5,500원을 문제 삼는 심재철 의원이나, 그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하고 해당 상임위 축출을 압박하는 여당이나 국민들 눈에는 한가롭다. 지방소멸과 고령사회라는 대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