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의 운명
2018-10-01 05:00
최근 한국 정부는 북한을 세계 무대에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남북 관계 개선은 물론 장기적으로 평화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더 이상 깡패 국가가 아닌 정상 국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대화 및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국 정부는 믿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신뢰하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마치 부부 싸움이 한창인 부부가 억지로라도 화해하도록 남편과 아내의 손을 잡아끌어서 서로 맞잡게 하려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서 일종의 중매꾼 노릇을 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은 어찌 보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만큼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운명이 세계 초강대국 미국 지도자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그를 치켜세우기까지 했겠는가. 최근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긍정적인 정세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라며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칭송하고 그의 협조와 호의를 얻기 위해 많은 찬사를 퍼붓고 있지만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취임 때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으며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 대해 갈수록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우방 국가들을 폄하하고 오히려 과거의 적들을 치켜세우는가 하면 미국이 주도해서 탄생한 세계의 질서를 그 뿌리부터 흔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국제 협력이나 다자주의보다는 국수주의와 일방주의를 선호한다. 자국이 서명했던 기후 협약이나 통상 협정을 파기하고 유네스코, 유엔인권위,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기구를 탈퇴했거나 탈퇴하려고 한다. 또한 국제 원조나 교류 지원 등 과거 미국 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프로그램들을 중단하거나 감축했다.
기존의 협력적인 세계 질서와 세계화를 부정하고 고립주의와 자국이익주의로 치닫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의 유엔 연설 후 같은 자리에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곧바로 이러한 고립주의를 비판하고 더 많은 국제 협력을 강조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과거에 여러 번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비난했다. 미국의 나토 방위비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나토에 대해 공격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유럽의 단결을 강조하기도 했다. 전 세계 무역의 근간이 되는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을 미국에 불이익을 준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심지어는 중국도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호무역을 옹호했던 중국이 자유무역을 주창하고,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추구했던 미국이 보호무역을 펼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신뢰를 잃고 친구를 잃는 상황에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오히려 높아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철저하게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그의 정책이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느끼는 미국인들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져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그의 장사꾼적인 기질이 미국을 더 부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따지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 보인 최근의 행보도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한편으로 남북 관계 분야에서 협조해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무역이나 방위비 분담 분야에서는 한국에 더 많은 요구를 하여 실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위해 노력한다는 자신의 모습은 분명 11월 중간선거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