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 미지급 사태 … 보험사와 금감원의 '눈치싸움'

2018-09-06 17:57
금감원 지침 기다리나 기약도 없어…금감원은 소송 결과 기다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즉시연금 미지급을 일괄지급해야 한다며보험사를 강하게 압박했다.[사진=금융감독원]


신한생명이과 AIA생명 등은 최근 금융감독원의 권고대로 미지급 즉시연금을 일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보험사들은 아직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미지급금의 규모 등을 확정하기 위해 금감원의 지침이 필요하나 기약조차 없는 탓이다.

금감원 측에서는 즉시연금 문제에 대한 법리 다툼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간단하게 기준을 설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법정에서 결과가 내려질 때까지 고객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신한생명과 AIA생명, DB생명은 아직 즉시연금 고객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즉시연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금감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미지급금을 모두 주겠다고 응답한 보험사다.

반면 금감원의 일괄지급 권고를 거부한 삼성생명은 이미 지난달부터 미지급금 중 일부를 고객들에게 추가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각 사들의 미지급금 규모를 살펴보면 신한생명과 AIA생명이 24억~25억원, DB생명은 2억원 수준으로 집계된다. 이들의 한해 당기순이익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보험금을 마련하느라 지급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이들 보험사는 보험금 마련보다는 보험금 지급 기준이 없어 지급을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감원에서 기준이나 지침을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즉시연금 미지급금이 기준에 따라 규모가 소폭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해당 보험사에서 자의적으로 기준을 만들어 미지급금을 지급할 경우 당국의 생각과 엇박자가 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금감원의 지침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당 보험사는 금감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일괄지급을 결정했으니 결국 금감원의 기준이 상당히 중요한 상황"이라며 "돈을 주고 싶지 않아서 고객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금감원에서 아직 지침을 주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이 사실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해당 보험사가 지침을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 상태에서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이 먼저 지침을 설정할 경우 자칫 향후 소송 결과에 따라 해당 지침이 잘못됐다는 판정을 받을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원에서 미지급금 기준을 따지게 될 텐데 금감원이 한 발 앞서 기준을 만들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사법부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신한생명이나 AIA생명 고객이 미지급금을 받으려면 법정 다툼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보험사는 금감원을, 금감원은 법원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