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우리 집엔 창녀 없다" 위안부에 등돌린 한국의 민낯
2018-08-07 17:20
'표창원 대학캠프'서 심용환 소장의 직격탄 발언 - 성노예 그녀들을, 해방 이후에도 해방 안시킨건 우리사회
1945년 해방이 되었으나, 몽골·중국·동남아를 떠돌며 위안부 생활을 했던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더럽혀진 몸을 자책하며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미군기지촌의 접대부였다. 당시엔 양공주라고 불렀고, 엘레나나 순희란 이름이 붙었다. 30대 중반까지 그렇게 살다가 더 이상 손님들이 찾지 않을 때쯤 청량리 집창촌으로 옮겨 포주 일을 한다. 그렇게 해서 늙은 뒤 독거노인으로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은, 지난달 25일 표창원 '대한민국 100주년'한림대 캠프(강원도 춘천시)의 근대사 강연에서 저 이야기를 꺼냈다. 1991년에 나온 책이며 출간 당시 그녀는 76세였다고 한다. 심용환은 2000년대에 이 책을 읽었는데, 몹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삶이 있을 수 있는가. 일본 뿐 아니라 조국인 한국에 의해 다시 지독하게 '학대'받은 생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었다.
이 말은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을 처음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가 집안 어른에게서 들었던 말이며, 해방 이후 그가 또다른 고통을 시작하는 운명의 '단언'이었다. 한국 사회는 강제로 위안부로 붙들려 갔다가 돌아온 이 땅의 여성들에게, 40여년간 '부당한 단죄'를 지속했다. 해방이 됐지만, 한국사회는 성노예의 굴레로부터 위안부를 해방시켜주지 않았다는 게 심용환의 문제의식이었다.
이런 지적이, 일본의 원천적인 전쟁범죄에 대한 엄격한 단죄를 양비론 쯤으로 줄여주려는 것은 아니라고, 심소장은 힘을 주어 말한다. 대한민국이 100년의 역사 속에서 그간 성숙시킨 '사회적 이성'이 지금쯤은, 우리 사회가 해방 이후 여성들에게 했던 심각한 가혹행위에 대한 자성(自省)을 할 때가 되었다는, 시대적인 심문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