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남구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 거주민 이주 난항 '제자리걸음'

2018-07-24 15:00
시행사 SH공사, 주민 이견 여전해… 2020년 말 준공 불투명
공공임대주택 제공 vs 현실적 이주비, 아파트 분양권 제공을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입구에 거주민들의 주거대책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사진=강승훈 기자]
 

강남구의 마지막이자, 서울시내 최대 '판자촌'으로 불리는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하다. 거주민들은 이주비 현실화를 포함한 현금 보상이나 향후 분양권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와 사업시행자인 SH공사는 임대아파트 공급 등 법의 테두리 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방침이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24일 찾은 구룡마을 입구에는 '30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 헐값 보상, 임대주택 절대 반대' 등 서울시와 SH공사를 향한 원망의 목소리가 담긴 현수막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었다. 천막농성에 돌입한 지 300일이 다 됐다는 글 뒤로 고령의 어르신 2명이 현장을 지켰다. 10분을 넘게 등산로를 따라 들어가자 빼곡히 자리한 가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허가로 지어진 집들마다 '4지구 몇호'란 형식으로 주소가 붙어 있다. 70대의 A씨는 "1980년에 들어와 38년째 살고 있다. 과거 관청에서 부여한 주소지로 주민등록증도 있다"며 "땅과 건물이 모두 등기가 되지 않은 건 맞지만 여기를 떠나 살 곳도 없어 당장 비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룡마을은 1970~1980년대 개포동 일대 개발로 집을 잃은 철거민 등이 집단촌락을 형성해 약 1000가구까지 늘어났다. 30여년간 사실상 방치되다 2011년 서울시가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이후 개발 방식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고, 2014년 12월 서울시가 강남구의 100% 수용·사용방식의 공영개발을 전격 수용하면서 재추진이 이뤄졌다.

서울시는 2년이 지난 2016년 11월 26만여㎡ 부지에 주상복합 및 분양·임대아파트를 갖춘 주거단지 개발구상을 발표하고, 작년 12월 서울시의회 동의를 받았다. 그러다 강남구의 실시계획인가 신청 절차에서 제동이 걸려 6개월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세부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현지 거주민의 이주가 최대 난관으로 떠올랐다.

공영개발을 위해서는 전체 토지를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하지만 주민들의 요구가 만만치 않다. 가구당 1억~2억원의 이주비 또는 분양주택의 특별공급을 바란다. 간략히 말하면 지금의 보금자리를 떠나도 다른 곳에 자리잡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이다.

주민 B씨는 "지상권에 대한 평가액은 다 나온 것으로 안다. 이 기준에 근거해 가구당 1000만~2000만원을 보상한다면 누구도 재정착하긴 어렵다"며 "공영방식으로 거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면 민간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SH공사는 공공임대주택을 주는 게 최선이라고 맞선다. 원칙적으로는 이주대책 수립 대상지구도 아니다. 이처럼 서울시·SH공사·거주민 간 보상문제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앞으로의 일정도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연내 실시하려던 감정평가와 보상금 지급은 빨라야 내년 상반기 중에나 시작될 전망이다. 사업완료 시점은 2020년 12월 말로 정했지만 이 역시 불투명하다. 총 2700여 가구를 짓는 데만 3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이다.

SH공사 관계자는 "구룡마을 내 주거용시설물은 토지보상법의 이주대책 중 분양아파트 공급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관련법이나 지침 등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는 시설"이라며 "맞춤형 지원 방안을 찾으려 노력하겠지만 보상에 대한 입장차가 지나치게 커 난항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구룡마을 주거협의체 최순자 위원장은 "토지보상법 시행령은 1989년 1월 24일 이전 무허가 건축물에 대해 이주대책 대상자로 포함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SH공사는 간이공작물이란 용어로 이주대책을 부정하고 있어 명백한 위법"이라며 "관련 법령의 미비 등으로 고통받는 주민을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강남구 마지막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 너머로 아파트 등 초고층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사진=강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