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한반도를 들들 볶고 있다. TV는 온열증세 사망자를 중계하듯 보도하고 있고, 국민들은 좋든싫든 '에어컨·선풍기 가택연금(家宅軟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지역까지 38선(22일 낮최고기온 38.0도)을 넘었고, 그보다 더 더운 뉴스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며 어디까지 올라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뜨거운 한 주를 여는 월요일, 조간에서는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끈다. 정부가 원전 가동을 늘리기 시작했다는 뉴스다. 박근혜 전정부 때라면, 당연한 얘기처럼 느껴지겠지만, 원전 축소가 무리하다는 일부 여론의 치열한 반기(反旗)를 거슬러가며 실천에 옮겨온 문재인표 '탈원전 정책'이 이 폭염 비상시국 앞에 잠정적이나마 궤도를 수정한 것이기 때문에 언론들의 입방아를 열게 한 것이다. 당장의 '시급한 필요'를 위해선 큰 그림도 한시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문정부의 유연함으로 읽어야 할지, 그런 조치야 말로 원전정책이 지닌 불안을 반증하는 사례가 아니냐는 반문으로 읽어야 할지는, 독자의 몫일지도 모른다. 신문들을 들여다보자.
# 아이러니와 SOS, 그리고 전력수요 예측의 속내
기사가 나온 곳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다. 그 이름에서 '원자력'을 떼고 '한국수력'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던 그 공기업이다. 22일 한수원은 "여름철 전력수요 급증에 대비해 (1)현재 정비중인 원전의 재가동에 속도를 내고 (2)일부 원전 정비를 여름철 이후로 늦추겠다"고 밝혔다. 정비중이거나 정비가 예정된 원전은 한빛3호기와 한울2호기다. 이것들을 손보는 일을 전력 피크기간 이후로 조정한 것이다. 또 한울4호기는 이달 20일부터 재가동해 24일 100% 출력이 가능하게 된다. 원전 정비 계획을 조정하고 한울4호기를 재가동하면서 500만kw의 전력이 추가 공급될 수 있다고 한수원은 밝힌다. 최근 정부가 잇단 폭염에도 불구하고 블랙아웃 사태는 없을 거라고 확언하는 까닭은, 사실 원전이 그걸 받쳐주기 때문인 셈이다.
매경은 그걸 '아이러니'라고 표현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기 사용이 급증하자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가 원자력 발전에 더욱 의지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매경, 고재만 기자)
한경도 비슷하다. 그걸 'SOS'라고 말한 게 다를 뿐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탈원전을 추진해온 정부가 원자력발전소에 '긴급 구조요청(SOS)'을 하고 있다. 당초 계획했던 원전의 정비일정까지 바꾸면서 전력 수급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기업 및 가정의 냉방수요에 따른 전기사용량이 급증해서다.(한경, 조재길 기자)
# 탈원전 논리를 뒷받침 하려다가?
좀더 시니컬한 쪽은 조선일보일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라는 헤드라인도 그렇지만, 석탄과 LNG발전소를 풀가동해도 안 되는 상황을 문장 앞에다 붙여놓았다.
불볕더위로 연일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자 정부는 미세먼지를 많이 내뿜고 발전단가가 비싼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풀가동하고 있다. 그런데도 전력 부족이 예상되자 정부는 원전을 추가 가동, 지난 3월 53%까지 떨어졌던 원전 이용률을 '전력수요 피크기'인 8월에는 8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조선일보,23일자 1면)
원전 이용률을 비교해가며, 실감의 정도를 확 높여놨다. 80%까지 원전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탈원전 정책을 무색하게 하는 숫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2면을 모두 털어 기사와 그래픽으로 이 문제를 짚고 있다. 여기서 짚고 있는 것은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의 전력 수요 예측이 거듭 빗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작년 12월 겨울에도 최대전력수요가 정부 목표치를 넘어서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를 곁들여, 정부가 전력수요 계획을 안일하게 잡고 있음을 공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그런데 이 신문은 이 문제를 '무리한 탈원전 정책'과 연결시킨다. 한번 보자.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이 잇따라 빗나간 데 대해 "정부가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연장 불허 등 탈원전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력수요를 너무 낮게 잡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선일보 23일자 2면)
이 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전문가를 모셔온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대 전력 수요 예측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보수적으로 여유있게 전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전력설비 과잉에 따른 손실보다 전력수급 불안에 따른 산업피해 등 치러야할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23일자 2면)
하나의 사안을 깊숙이 끌어와서 폭염과 원전에 숨어있는 역설적 모순을 아프게 드러내는 매서운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로서도 이 기사를 읽으며 한숨을 푹푹 내쉴지 모르겠다. 아니면 무슨 반론을 낼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상국 아주경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