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간 북녘 땅 잠들었던 6·25 전사자 윤경혁 일병,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018-07-13 14:28
6·25전쟁 당시 북한지역서 전사한 국군 유해가 68년 만에 하와이를 거쳐 고국의 품에 안겼다. 우리측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국방부는 13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한미 6·25 전사자 유해 상호봉환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고(故) 윤경혁 일병의 유가족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멕케이그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장 등이 참석했다.
미국 제1기병사단 소속 카투사로 전쟁에 참전한 윤경혁 일병은 1950년 11월 28일 북한 평안남도 개천지역서 전사했다. 같은 해 9월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반격작전을 개시했으나 11월 25일부터 중공군의 압박으로 철수해야 했다.
그의 유해는 2001년 북한과 미국이 평남 개천지역에서 공동으로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했을 당시에 수습됐다. 미군 전사자와 윤경혁 일병과 함께 수습된 유해는 하와이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으로 옮겨졌다.
DPAA는 유해 확인 작업 끝에 윤경혁 일병을 한국인으로 추정했고, 그의 유전자(DNA)를 추출해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보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윤경혁 일병의 DNA와 보관 중이던 6·25 전사자 유가족의 DNA와 일일이 대조해 신원을 확인했다.
2016년 6월 강원도 철원 잠곡리에서 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수습된 미군 전사자 유해도 미국으로 송환된다. 이 지역은 6·25전쟁 당시 사창리전투(1950.4.21~25), 김화·포천축선전투(1951.4.22~25), 대성산·취봉전투(1951.6.5~6.11) 등 격전지였다.
미군 유해는 과거 전투 기록과 참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굴토 작업을 하던 중 발견됐다. 당시 현장에는 아군과 적군의 유품이 혼재된 상태였다. 이 중 가지런히 놓인 전투화 밑창 2점과 유해가 수습됐는데 정밀감식을 통해 서양인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한미가 두 차례 공동감식을 통해 미군 유해로 최종 판정했다. 이 유해는 DPAA로 옮겨져 신원확인에 들어간다. 한미 양국이 6·25 전사자 유해를 같은 날 상호 봉환하는 행사를 한 것은 2016년 이후 두 번째이다.
국방부는 2000년 유해발굴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총 10회에 걸쳐 미군 유해 13구와 영연방 유해 3구를 미국으로 송환했다. 미국 또한 북미 공동발굴을 통해 북한지역에서 발굴한 국군 전사자 유해를 2012년 12구, 2016년 15구를 한국으로 보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웠던 한미 전사자 유해가 68년여 만에 서로의 조국으로 돌아간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을 수 있게 6·25전쟁 때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신 모든 참전 용사들을 자신의 조국과 유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릴 수 있도록 미국과 유해발굴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