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선의 중국보고] 손자병법으로 본 중국의 무역전쟁 대응법
2018-07-08 14:42
"전쟁 잘하려면 남에게 끌려다니지 말고 주도권 잡아야" <손자병법>
무역전쟁을 기회로 삼아 개혁개방, 혁신 속도내는 중국
무역전쟁을 기회로 삼아 개혁개방, 혁신 속도내는 중국
"선전자, 치인이불치어인(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
중국의 가장 유명한 병법서인 손자병법 ‘虛實(허실)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자신의 의도대로 상대를 움직이지, 상대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관성 없이 상대방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하고 주도권을 잡으라는 말이다.
미국과 사상 초유의 무역전쟁에 임하는 중국 지도부는 지금도 손자병법의 이 구절을 곱씹고 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포문을 연 무역전쟁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개혁·개방과 혁신을 추진해 경제의 질적 성장을 모색하는 게 중국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거센 통상공세에 휘둘리지만은 않겠다는 모습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공산당 간부에게만 열람되는 지시문건을 통해 "미·중 무역전쟁을 이용해 중국 개혁개방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 밝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8일 "미국 무역 '집단 따돌림(霸凌)' 주의에 맞서는 핵심은 우리가 할 일을 잘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결연히 맞서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로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중국으로선 오히려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기회로 삼아 시장 개방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이로써 외국인이 중국에서 100% 투자해 전기차 기업 설립을 허용하고, 외국인의 중국 현지은행 지분 100% 매입도 가능해진다. 은행 이외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생명보험사의 외국인 투자 허용 비율은 51%까지 높인다. 이밖에 철도간선도로망 및 전력망, 철도여객 운송, 국제해운·국제선박 대리, 주유소, 식량 수매·도매업, PC방, 조선, 항공기 설계·제조·수리, 흑연 채굴업, 희토류 제련·분리, 텅스텐 제련 등도 외국인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업종으로 분류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관세장벽도 낮추고 있다. 이달부터는 수입 자동차 관세도 기존의 20~25%에서 15%로 인하했다. 세탁기·냉장고 등 가전제품, 의류, 화장품, 의약품 등 방면에서 수입품 관세도 최대 65%까지 대폭 인하했다. 이밖에 한국, 인도, 스리랑카 등 아시아 5개국에서 수입하는 대두(콩) 관세를 모두 없앴다.
동시에 미국의 중국 하이테크 산업 발전 억제 움직임에 대응해 자국산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미국 상무부가 중국 통신장비기업인 ZTE를 겨냥해 미국기업과 7년간 거래를 금지시킨 게 자극제가 됐다. 당시 중국 내에선 중국이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반도체 등 하이테크 산업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중국은 올 들어 다롄(大連) 칭다오(青島) 등 14개 지역을 ‘중국 제조 2025’ 시범구로 조성하기로 하고, 국유은행과 3000억 위안(약 50조원) 규모의 전략적 신흥산업 육성 기금도 마련했다. 모두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T), 첨단장비 제조, 신소재 등 주요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무역전쟁은 승자가 없는 게임이다. 손자병법 구절을 인용하자면 모든 무역전쟁은 '살적일천, 자손팔백(殺敵一千, 自損八百, 적을 천명 죽이기 위해 아군도 팔백명이 희생된다)'다. 실제로 무역전쟁으로 미·중 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벌써부터 신흥국 통화가치와 주식, 원자재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이 된 모양새다. 싱가포르 DBS 은행은 최근 미국 경제방송 CNBC에서 미·중간 전면적 무역전쟁으로 한국의 성장률이 전년(2.9%) 대비 0.4%포인트 하락한 2.5%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도 가만히 눈 뜨고 앉아서 미중 양국이 극적으로 타협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선전자, 치인이불치어인'이라는 말처럼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면밀히 분석해 선제적 통상외교와 기업들의 발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