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의 미래] 혼란하다 혼란해…삐에로쑈핑 VS. 돈키호테

2018-07-05 14:16
"청정 지역 코엑스에 무려 흡연실도 있다!!"

카피캣을 제대로 하는 것도 능력이다. [사진=픽사베이]

제대로 베끼면 '쿨함'을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샤오미가 처음 등장했을 땐 애플의 아류작이라 비웃었습니다.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자 대륙의 실수라 놀랐습니다. 발뮤다와 비슷한 공기청정기, 선풍기 등 가전제품을 공개하자 사람들은 샤오미 제품 구매를 위해 직구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6월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삐에로쑈핑' 1호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B급 감성 물건들이 760평 규모에 이리저리 진열돼있었고 점원들은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바삐 매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삐에로 쑈핑의 컨셉은 'FUN&CRAZY'다.[사진=이마트]

삐에로쑈핑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키호테 빼박(빼도박도의 준말)인데"라고 말합니다. 돈키호테는 일본 유통업계 이단아로 불리는 특이한 쇼핑몰입니다.

'누가 유통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돈키호테를 보게 하라'

일본은 한국보다 저성장, 고령화를 먼저 겪은 나라입니다. 소비시장이 쪼그라들고 유통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특히 일본 백화점은 2000년 이후 16년 연속 역성장을 할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에 설립된 돈키호테는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리며 성장했습니다.(2016년 매출액은 7천596억엔) 일본인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의 필수 여행 코스로 탄생했습니다. 돈키호테는 연간 550만명 이상의 외국인 여행객이 방문합니다. 이는 외국인 여행객 2명 중 1명은 방문하는 수치입니다. 돈키호테는 매장 안에 환전 자판기를 설치까지 했습니다.
 

돈키호테 신주쿠점[사진=By se7en (Flickr: 新大久保。) via Wikimedia Commons]

돈키호테는 과자, 화장품, 주방 잡화, 주류, 코스튬 상품, 의약품, 심지어 루이뷔통 같은 명품 가방도 판매하는 잡화점입니다. 판매하는 상품만큼이나 운영 방식도 특이하고 자유도가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상품 매입은 점포가 지역이나 매장 특성에 맞게 꾸립니다.

진열대 구성은 직원에게 맡깁니다. 그냥 시키는 정도가 아닙니다. 권한과 예산을 모두 맡기고 진열대에서 발생한 수익도 직원과 배분합니다. 놀라운 점은 아르바이트생이라도 똑같은 권한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영방식이 진열대를 개성있게 만들고 혼란스러움을 극대화 합니다. 아르바이트생도 게임 하듯 진열대를 꾸미고 고객에게 자랑합니다. 특이한 진열대는 인터넷 밈으로 온라인 이곳저곳에 퍼지며 홍보효과도 누립니다.
 

혼란스러움도 재미있다면 컨셉이 되는 시대다.[사진=네이버 웹툰, 이말년의 서유기]

고객은 마치 놀이공원이나 보물 동굴에 들어온 느낌으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매장을 구경하며 다닙니다. 돈키호테는 고객이 시간을 즐겁게 쓰도록 하는 시간소비형 소매점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돈키호테 외국인 방문객 그래프[그래프=유진투자증권]

이제 돈키호테의 핵심 고객은 외국인 여행객입니다. 그들을 위해 24시간 영업이나 심야 영업에 공을 들였습니다. 돈키호테를 방문하는 외국인 여행객 중 한국인이 1위라고 합니다.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돈키호테인데 왜 한국에 진출하지 않았을까요? 한국에도 혼란스러운 소매점 수요가 있어 보이고 이쯤 되면 삐에로쑈핑의 등장이 당연해 보입니다.

월급 받으면 삐에로쑈핑으로 간다!(ft.돈 쓰는 지옥)
 

[사진=이마트]

유진철 삐에로쑈핑 담당 브랜드 매니저는 "삐에로쑈핑이 벤치마킹한 일본 돈키호테의 경우 작년 기준 약 370여개 매장에 연간 8조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이마트는 올해 총 3개의 삐에로 쑈핑을 선보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삐에로쑈핑은 한국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요?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삐에로쑈핑 후기라며 "삐에로 삐에로 삐에로 삐에로 쑈핑 삐에로 삐에로 삐에로 삐에로 쑈핑"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만큼 정신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삐에로쑈핑은 혼란스럽고 잡다하면서도 이곳이 아니면 못 살 것 같은 물건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SNS에 올라온 반응을 종합해보면 '혼란스럽긴 하지만 돈키호테보다 덜하고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만, 무엇인가 사게 만든다' 정도입니다. SNS에 삐에로쑈핑 인증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삐에로쑈핑이 돈키호테 같은 분위기를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 직접 확인해보자는 심리도 삐에로쑈핑을 찾아가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삐에로쑈핑과 관련된 트위터 반응을 모아봤습니다.
 

지하철 2호선에서 담배를?
 
 

#지하철#흡연실#담배#subway#삐에로쑈핑

Kkisdad(@bbungsooni)님의 공유 게시물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삐에로쑈핑 흡연실 모습>

애연가 사이에서 삐에로쑈핑의 흡연실이 최대 화두처럼 보입니다. 한 누리꾼은 "청정 지역인 코엑스에 무려 흡연실도 있다!"면서 반색했습니다. 평범한 흡연실이 아닙니다. 2호선 전철 실내를 구현한 흡연실입니다. 전철 중간에 떡하니 재떨이가 있어 애연가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삐에로쑈핑의 성공과 실패를 벌써 이야기할 시기는 아닙니다. 돈키호테의 성공에는 의외성과 혼란스러움, 다양성은 물론 현지인이 아닌 외지인 혹은 외국인의 유입과 그들의 수요를 적극 반영한 유연성에 있습니다. 훗날 일본 여행객이 삐에로쑈핑 때문에 한국에 오는 날도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