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주 52시간 근무제와 워라밸
2018-07-05 13:19
하반기가 열리는 7월 2일 월요일 출근길. 예년 같으면 올해도 벌써 반년이 지났구나 하는 따위의 소회를 느꼈을 법한데, 이날은 사뭇 달랐다. 전날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었고, 첫 적용 대상인 공공기관에 몸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필자도 어느 판사님의 유명한 칼럼 탓에 단위 조직 관리책임자의 통칭이 된 ‘부장님’인 탓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근무시간이 끝나기 직전인 오후 5시 55분에는 급기야 직원들에게 퇴근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평소에 직원들이 부장님 눈치보며 칼퇴근하는 직장이 아닌데도 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보면서 너무나 익숙해져 희미해진 14년 전의 주 5일 근무제가 기억의 저편에서 소환되어 왔다. 토요일이 반공일이었지만, 언론사 기자였던 필자는 마감을 끝내고 밤중에 귀가하기 일쑤여서 주 5.5일이 아니라 주 6일 근무를 하던 처지였다. 그런데 2004년 7월 주 5일제가 전격 시행되면서 근무환경이 삽시간에 변했고, 주 이틀을 쉰다는 것이 얼마나 삶을 기름지게 하는 일인지를 실감했었다.
주 5일제 이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는 노동자의 삶과 한국 사회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14년 만에 일하는 문화의 대격변을 몰고 올 참이지만 사실 새로운 법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건 토요일과 일요일이 ‘근로일’에 포함되었을 뿐이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근로기준법은 ‘일주일에 토·일요일이 포함된다’는 내용을 명문화해 토요일과 일요일에 최대 16시간 할 수 있었던 초과근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법정근로시간(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 16시간을 합한 최대 주 68시간 근무가 개정 후에는 40시간에 연장근로(휴일근로 포함) 12시간을 합해 주 52시간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당장 7월 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강행 규정이고, 근로시간 위반은 노사가 합의해도 소용없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가 아니므로 적발되면 사업주는 물론 인사담당 임원과 부서장도 처벌받게 된다.
한국 임금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016년 기준 205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348시간) 다음으로 길다. 한국 노동자들은 OECD 평균(1707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298시간)보다는 무려 700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다. 정부가 제도 도입 배경으로 꼽은 장시간 노동으로 국민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고, 과도한 노동시간은 낮은 생산성과 산업 재해, 높은 자살률 등의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이래서는 일과 삶의 양립, 이른바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준말)'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주 52시간 근로 법제화와 제도 개선 등을 통해 2022년까지 근로시간을 1800시간대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레일에서 탈선을 일으킬 위험요소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52시간 단축 시행시기가 기업 규모별로 차등화되었고, 주 52시간 초과 노동자가 95만5000명(특수고용직, 5인 미만, 특례사업 등을 제외)에 그친다지만 그 영향은 대다수 사업장과 노동자에게 미칠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둘러싸고 노사 간 쟁점도 다르다. 노동자 측은 실질임금의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이야 반길 일이지만, 소득 감소는 생계에 위협이 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임금 감소율은 10% 안팎, 30만~40만원 줄어든다. 그간 특히 낮은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연장근로를 많이 했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타격이 될 공산이 크다.
기업들의 가장 큰 우려는 생산성 하락이다. 첫 적용대상인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0.1%(3627개)에 불과하고 이들의 절반 이상이 이미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시행하지 않고 있다 해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를 막기 위해 인력을 늘릴 여력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중소·영세기업이다. 한두 해 시간을 벌었지만, 일부 중견기업을 제외하면 신규 인력 채용이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신규 고용 창출도 일어나야 하지만 먼저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 상승으로 나타나야 한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33.1달러로 OECD 평균인 47.1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근무와 휴무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어디까지를 근무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앞으로 많은 소송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개별 사업장과 노동자의 사례가 워낙 다양해 큰 혼란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많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주 52시간이라는 큰 틀을 지키되 사업장별로, 업무형태별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노동 관행이나 업무 방식, 기업 문화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제도가 안착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와 진통이 예상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기차는 달려야 한다. 워라밸은 장기적으로 노사 모두에게 이롭고 한국경제가 내려야 하는 종착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