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근무 시행] ③ 철야 없는 공사장…일찍 문 닫는 마트

2018-06-27 00:10
초과 근무 필수였던 건설업계…근로자 피로도 감소로 업무 집중력 높아질 듯
대형마트, 폐점시간 자정 → 오후 11시 조정

여당과 정부·청와대가 다음달 1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부터 먼저 실시되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6개월간 단속이나 처벌을 하지 않는 계도기간을 두기로 결정한 지난 20일 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청사의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1. 오후 5시 50분 수도권의 한 분양 아파트 공사 현장. 퇴근 10분 전이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작업을 지시하는 현장 소장은 업무용 모니터를 서서히 끌 준비를 한다. 타워크레인, 포클레인, 콘크리트 타설장비 등도 속속 가동을 멈추고, 뙤약볕 아래 고된 하루를 보냈던 근로자 300여명은 샤워실로 발길을 옮기며 하나둘씩 퇴근할 채비를 한다. 건설 현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칼퇴'가 아직 낯설지만, 근로자들은 이에 점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이다.

#2. 앞으로 해외건설 현장에 탄력 근무제도가 도입된다. 특히 지역별로 차등을 둬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이라크·이집트 등 날씨가 덥고 근무환경이 녹록지 않은 중동 및 아프리카 등지는 같은 시간 근무에 3개월에 1회 휴가가 주어지고, 싱가포르·호주 등 여건이 양호한 곳은 종전과 유사하게 4개월에 1회 휴가가 적용된다. 이는 평균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맞추기 위한 조치다.

모두 오는 7월 1일 이후 주 52시간 근무로 인해 건설업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앞의 사례가 가상의 시나리오라면, 두 번째 사례는 실제 GS건설이 당장 내달부터 적용키로 한 해외현장 52시간 근무 방안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로 건설업종에 극심한 변화의 바람이 일 것으로 보인다.

그간 건설업계에서 초과 근무나 철야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건설업은 특성상 현장에서 주로 근무가 이뤄져 현장 인력 통제, 이에 대한 관리·감독, 기일 준수 등 시간 소요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해진 기한에 맞춰 공정을 진행해야 건설사의 수익률을 맞출 수 있는 점도 한몫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근로자들은 피로 누적을 호소했고, 큰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건설업계 현장직은 '삶의 질'을 보장 받기 쉽지 않은 직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앞으로 주 52시간 근로가 보장되면 근로자들의 안전성 및 집중력을 높일 수 있고, 이에 따른 '노동의 질' 향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 52시간 근무는 많은 건설사들이 공정 안전 지표로 삼고 있는 '무재해 인시(人時)'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시란 공사 근로자 전원의 근무 시간을 누적으로 합산한 개념이다.

현장직이 아닌 내근직의 경우 좀 더 빠른 속도로 주 52시간 제도가 정착될 전망이다.

출근시간을 오전 8~10시 사이 1시간 단위로 정해 부서별로 차등 운영하는 시차 출퇴근제가 운영되거나, 1주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근무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탄력근무제 도입도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례적 회의 간소화, 퇴근 후 회식 금지 등 근로 문화의 개선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유통업계 역시 쇼핑의 시계가 바뀌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매장 영업시간이 대부분 줄었다.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도 함께 조정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영업시간을 한 시간 단축했다. 매일 자정 폐점하던 영업점을 한 시간 당긴 밤 11시에 문을 닫는 것.

가장 먼저 시간을 앞당긴 곳은 이마트다. 이마트는 올해 초부터 전 점포의 영업종료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밤 11시에 문을 닫고 있다. 롯데마트도 이달 1일부터 서울역점과 빅마켓 5개 매장을 뺀 전 점포의 영업 종료시간을 자정에서 밤 11시로 맞췄다. 홈플러스는 아직까지 안산 고잔점, 전남 순천 풍덕점 2개 점포의 영업시간만 밤 11시로 당겼지만, 차후 영업시간 조정 점포를 늘릴 계획이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마트의 한 시간 이른 영업종료가 아직까지 직원들의 삶에 크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폐점이 한 시간 당겨지더라도 마트 근무 직원은 근무표에 따라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업무량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전체적인 근무시간이 일부 조정돼 담당별 탄력근무제 범위가 넓어지고, 마감조 직원도 일찍 퇴근하는 경우는 다소 늘었다는 평이다. 한 시간 이른 퇴근이 잔업이나 심야교통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본사 직원들 역시 근무시간이 함께 줄어 마트문화센터의 등록 비율이 최근 높아졌다고 전했다.

백화점도 변화에 동참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다음 달 주 52시간 근무에 맞춰 39년 만에 개점시간을 변경했다. 7월 2일부터 본점과 강남점을 제외한 전 점포의 개점시간을 기존 오전 10시 30분에서 30분 늦춘 오전 11시로 정했다.

우선 신세계백화점은 올 3월부터 서울 영등포점을 시범적으로 오전 11시에 개점했다. 오전 시간의 고객 방문율이 높지는 않지만 매장 내 근무하는 협력사원의 복지에 도움이 된다는 분위기다. 협력사원들이 매장 오픈을 위해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며, 자녀의 등교에도 충분히 시간을 낼 수 있다는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