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전문학 산책] ‘순간의 진심’ 시인 위안전의 작품세계
2018-06-22 09:07
‘큰 바다’와 ‘무산 구름’처럼 최고였던 아내 웨이충
연인과 헤어진 지 오래됐는데 새로운 사람을 안 만나거나, 이미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인 중국인. 또 배우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재혼을 하지 않는 중국인을 만나 “왜 아직도 혼자세요?”라고 질문한다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일찍이 큰 바다 보고 나면 그만한 강물 찾기 어렵고(曾經滄海難爲水), 무산에 있는 것이 아니면 구름이 아니라네(除却巫山不是雲).” 이는 중국 당(唐)나라 시인 위안전(元稹·원진)이 쓴 ‘이사5수(離思五首)’ 중 네 번째 시에 있는 구로 중국인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다.
위안전은 이 시를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첫 번째 아내 웨이충(韋叢·위총)을 애도하며 썼다. 이 두 구의 요지는 이미 큰 바다를 봤기 때문에 시시한 강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산 구름의 아름다움을 봤기 때문에 다른 구름은 구름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죽은 아내 웨이충이 ‘큰 바다’와 ‘무산 구름’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여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시구를 인용하는 중국인이라면 아마도 이전의 연인이, 남편이, 아내가 자신에게는 최고였기에 지금은 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큰 바다’와 ‘무산 구름’의 유래
시구 ‘일찍이 큰 바다 보고 나면 그만한 강물 찾기 어렵고(曾經滄海難爲水)’는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의 ‘바다를 본 사람은 다른 물은 물이라 하기 어렵다(觀於海者難爲水)’에서 유래했다. 엄청난 스케일로 도도히 흐르는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웬만한 강물은 물 같지도 않다는 의미다. 이는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공부해 본 사람은 웬만한 말에는 마음이 움직이기 어렵다는 뒷구절로 내용이 연결된다.
시구 ‘무산에 있는 것이 아니면 구름이 아니라네(除却巫山不是雲)’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 시인 쑹위(宋玉·송옥)가 쓴 ‘고당부(高唐賦)’ 서문에 나오는 ‘무산운우(巫山雲雨)’를 활용해 쓴 것이다. 중국 고대 초나라 화이왕(懷王·회왕)이 고당관(高唐館)에서 연회를 즐기다가 잠시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무산신녀(巫山神女)를 만나 잠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헤어질 때 그 여인이 말하기를 자신은 무산 남쪽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에서 아침, 저녁으로 화이왕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남녀 간에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가리키는 고사성어 ‘운우지정(雲雨之情)’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그럼 이 대목에서 위안전이 이토록 찬미하고 사별한 아내 웨이충은 어떤 여성이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웨이충은 당시 세도가였던 웨이샤칭(韋夏卿·위하경)의 딸이었다. 하지만 집안 배경을 믿고 요샛말로 ‘갑질’을 일삼는 유형이 아니라 어질고 현숙한 여성이었다. 시문을 잘했으며 부귀를 탐하지 않았던 허영이 없는 여성이었다.
위안전이 웨이충을 애도하며 쓴 다른 시 ‘삼견비회(三遣悲懷)’의 첫 번째 시를 읽어보면 이러한 웨이충의 사람 됨됨이가 잘 드러난다. 이 시에서 ‘내가 옷 없음을 보고는 옷상자 뒤적이고(顧我無衣搜藎篋), 술을 사라며 금비녀 뽑아줬지(泥他沽酒拔金釵)’라며 웨이충이 생전에 가난한 남편을 어질게 보필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시를 쓸 당시엔 위안전의 벼슬도 높아져 봉급을 많이 받게 됐다. 하지만 웨이충은 이미 죽어 그녀의 제사상에 제물을 올릴 뿐이라며 슬퍼하는 모습이 위안전의 모습이 시 후반부에 그려진다.
◆‘소문난 사랑꾼’ 위안전
그런데 이 절절한 그리움의 노래를 한 위안전이 웨이충과 결혼 전 잉잉(鶯鶯·앵앵)이라는 여인과 뜨거운 연애를 하면서 ‘앵앵전(鶯鶯傳)’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남겼다. 이뿐만 아니라 웨이충이 죽은 다음에 안셴핀(安仙嬪·안선빈)이라는 첩과 페이수(裴淑·배숙)이라는 두 번째 아내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위안전은 자신보다 11세 연상이었던 당나라 유명 여시인 쉐타오(薛濤·설도)와의 연애도 잘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그가 앞의 시에서 노래한 웨이충에 대한 감정은 거짓이었는지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시를 읽어보면 위안전이 이 시를 쓸 때 웨이충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었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그건 아마 시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위안전의 진심을 담았기 때문일 것 같다. 마법처럼 그렇게 믿게 되는 묘한 매력 때문에 위안전의 시가 지금까지도 중국인에게 애송되는 것 같다.
“일찍이 큰 바다 보고 나면 그만한 강물 찾기 어렵고(曾經滄海難爲水), 무산에 있는 것이 아니면 구름이 아니라네(除却巫山不是雲).” 이는 중국 당(唐)나라 시인 위안전(元稹·원진)이 쓴 ‘이사5수(離思五首)’ 중 네 번째 시에 있는 구로 중국인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다.
위안전은 이 시를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첫 번째 아내 웨이충(韋叢·위총)을 애도하며 썼다. 이 두 구의 요지는 이미 큰 바다를 봤기 때문에 시시한 강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산 구름의 아름다움을 봤기 때문에 다른 구름은 구름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죽은 아내 웨이충이 ‘큰 바다’와 ‘무산 구름’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여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시구를 인용하는 중국인이라면 아마도 이전의 연인이, 남편이, 아내가 자신에게는 최고였기에 지금은 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큰 바다’와 ‘무산 구름’의 유래
시구 ‘일찍이 큰 바다 보고 나면 그만한 강물 찾기 어렵고(曾經滄海難爲水)’는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의 ‘바다를 본 사람은 다른 물은 물이라 하기 어렵다(觀於海者難爲水)’에서 유래했다. 엄청난 스케일로 도도히 흐르는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웬만한 강물은 물 같지도 않다는 의미다. 이는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공부해 본 사람은 웬만한 말에는 마음이 움직이기 어렵다는 뒷구절로 내용이 연결된다.
시구 ‘무산에 있는 것이 아니면 구름이 아니라네(除却巫山不是雲)’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 시인 쑹위(宋玉·송옥)가 쓴 ‘고당부(高唐賦)’ 서문에 나오는 ‘무산운우(巫山雲雨)’를 활용해 쓴 것이다. 중국 고대 초나라 화이왕(懷王·회왕)이 고당관(高唐館)에서 연회를 즐기다가 잠시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무산신녀(巫山神女)를 만나 잠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헤어질 때 그 여인이 말하기를 자신은 무산 남쪽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에서 아침, 저녁으로 화이왕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남녀 간에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가리키는 고사성어 ‘운우지정(雲雨之情)’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그럼 이 대목에서 위안전이 이토록 찬미하고 사별한 아내 웨이충은 어떤 여성이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웨이충은 당시 세도가였던 웨이샤칭(韋夏卿·위하경)의 딸이었다. 하지만 집안 배경을 믿고 요샛말로 ‘갑질’을 일삼는 유형이 아니라 어질고 현숙한 여성이었다. 시문을 잘했으며 부귀를 탐하지 않았던 허영이 없는 여성이었다.
위안전이 웨이충을 애도하며 쓴 다른 시 ‘삼견비회(三遣悲懷)’의 첫 번째 시를 읽어보면 이러한 웨이충의 사람 됨됨이가 잘 드러난다. 이 시에서 ‘내가 옷 없음을 보고는 옷상자 뒤적이고(顧我無衣搜藎篋), 술을 사라며 금비녀 뽑아줬지(泥他沽酒拔金釵)’라며 웨이충이 생전에 가난한 남편을 어질게 보필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시를 쓸 당시엔 위안전의 벼슬도 높아져 봉급을 많이 받게 됐다. 하지만 웨이충은 이미 죽어 그녀의 제사상에 제물을 올릴 뿐이라며 슬퍼하는 모습이 위안전의 모습이 시 후반부에 그려진다.
◆‘소문난 사랑꾼’ 위안전
그런데 이 절절한 그리움의 노래를 한 위안전이 웨이충과 결혼 전 잉잉(鶯鶯·앵앵)이라는 여인과 뜨거운 연애를 하면서 ‘앵앵전(鶯鶯傳)’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남겼다. 이뿐만 아니라 웨이충이 죽은 다음에 안셴핀(安仙嬪·안선빈)이라는 첩과 페이수(裴淑·배숙)이라는 두 번째 아내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위안전은 자신보다 11세 연상이었던 당나라 유명 여시인 쉐타오(薛濤·설도)와의 연애도 잘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그가 앞의 시에서 노래한 웨이충에 대한 감정은 거짓이었는지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시를 읽어보면 위안전이 이 시를 쓸 때 웨이충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었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그건 아마 시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위안전의 진심을 담았기 때문일 것 같다. 마법처럼 그렇게 믿게 되는 묘한 매력 때문에 위안전의 시가 지금까지도 중국인에게 애송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