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철의 세금 쉽게 보기]고조선 때도 존재했던 세금
2018-06-21 15:13
조선시대 공법‧대동법 통한 공평과세 실현
청량음료세 등 일제강점기 때 다양한 세금 신설
청량음료세 등 일제강점기 때 다양한 세금 신설
우리나라 세금에 대한 기록은 중국 역사서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경(詩經)’에는 고조선이 농토를 정리해 세금을 매겼다는 기록이 있다. ‘맹자(孟子)’에 고조선이 수확의 1/20을 세금으로 징수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맹자는 당시 고조선이 낮은 세금으로 유지된 것은 큰 사원‧궁궐 등을 건축하지 않고, 지배귀족의 검소한 생활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삼국시대는 조용조(租庸調)를 근간으로 하는 조세제도가 존재했다. ‘조’는 토지, ‘용’은 사람, ‘조’는 호(戶)가 대상이다. ‘곡물-노동력-특산물’이 바로 세금의 형태로 징수됐다는 의미다. 조용조는 19세기 말까지 우리나라 세금제도의 기본이 된다.
조선 전기 세종대왕은 토지 품질(6등급)과 생산량(9등급)을 나눠 세액을 결정한 ‘공법(貢法)’을 실시해 공평과세를 실현하려 했다. 공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적인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57%가 찬성했다고 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압도적이지 않고, 의견이 분분하자 일부 지역(경상‧전라도)에 시범적으로 시행했다. 7년 후 공법을 최종적으로 완성해 시행했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세금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방납(防納)이 성행해 농민 부담이 늘자 특산물을 쌀로 통일한 대동법(大同法)이 있다.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양민에게만 부과되던 군포를 양반에게도 부과하는 ‘호포제(戶布制)’가 시행된다. 갑오개혁 이후 세금을 돈으로 내는 ‘금납제(金納制)’가 도입된다. 이듬해 선포된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 ‘홍범 14조’ 6조에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는 게 명시된다.
1906년 지방군수 권한이었던 조세 부과징수권은 독립된 징세기관인 세무관으로 이전된다. 이때 세무관 주재소를 ‘세무서’로 명칭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다양한 세금이 만들어졌다. 화투나 마작 등에 매겼던 물품세인 골패세, 지금의 주세로 합쳐진 청량음료세 등이 존재했다. 전기가스세‧영업세‧석유류세 등도 있었는데 1977년 특별소비세로 합쳐졌고, 지금은 개별소비세로 불린다.
1934년 12월에 신설된 상속세는 지금까지 이름이 바뀌지 않은 세금 중 하나다. 법인세는 1949년, 증여세는 1950년에 만들어진 뒤 지금도 이름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소득세는 1919년 법인소득세였다가 1934년 일반소득세를 거쳐 1949년에 소득세라는 이름으로 현재에 이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