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극복한 호시절 저무나…세계 경제 '빨간불'
2018-06-20 14:54
트럼프발 무역전쟁, 주요국 통화긴축 세계 경제 위협
서머스·크루그먼, 경기침체 재발, 금융시장 충격 경고
서머스·크루그먼, 경기침체 재발, 금융시장 충격 경고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암운이 짙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이 합세해 힘겹게 일으킨 경기회복세가 마침내 꺾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을 주도해온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선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비롯된 글로벌 무역전쟁의 전운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악재로 떠올랐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1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트럼프가 무역전쟁으로 가고 있는데 시장의 자만에 놀랐다"며 "우리는 그가 갈 데까지 가서 세계 경제를 끝장낼지 여부를 알지 못하지만, 확실히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 50%? 30%?"라고 썼다.
블룸버그는 크루그먼의 경고가 글로벌 자산시장이 올 상반기에 밋밋한 실적을 낸 뒤에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통화긴축에 나서고 유럽이 통화부양을 중단하려 하면서 불거진 우려 속에 글로벌 증시와 채권시장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는 설명이다. 통신은 그럼에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이 15배로 지난 10년간의 평균을 웃돈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이 시장의 자만을 문제 삼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의 파장이 아직 제한적이지만 곧 강도를 키우며 장기전으로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보복의 악순환이 전면적인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미국은 이미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 주요 동맹국이 수출하는 철강·알루미늄에도 폭탄관세를 물려 갈등을 증폭시켰다. 글로벌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세계 경제의 성장판인 무역이 위축되면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기침체 이상의 후폭풍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세계 경제가 새 경기침체를 맞을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장기침체 가능성을 경고해온 래리 서머스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전날 블룸버그TV와 한 회견에서 "경기침체는 일어나기 마련"이라며 "경기침체 때 일반적인 각본은 금리를 500bp(5%포인트) 내리는 것인데,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그럴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이다. 주요 중앙은행들은 안정적인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본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져 물가상승률이 2%를 넘어설 것 같으면 기준금리를 올려 돈줄을 죄는 게 보통이다. 서머스 전 장관은 중앙은행들이 더 이상 인플레이션을 피하는 걸 통화정책의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게 통화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저인플레이션으로 고전해온 주요국은 최근 인플레이션 압력이 모처럼 커지자 통화긴축 행보를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2015년 이후 지난주까지 기준금리를 7번이나 올렸고 연내 두 차례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같은 주 통화정책회의에서 연내 양적완화를 중단하기로 했다. 양적완화는 자산을 매입해 돈을 푸는 통화부양책이다. 일본은행(BOJ)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직·간접적으로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요 중앙은행, 특히 연준의 통화긴축 행보는 이미 신흥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연준의 금리인상은 달러 강세 요인으로 신흥국에 유입된 글로벌 자금의 이탈을 부추긴다. 글로벌 자금은 금리가 높은 곳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달러 강세는 신흥시장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막대한 달러 빚의 상환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 여파로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등 취약한 신흥국들이 이미 홍역을 치렀다.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고, 다른 주요 중앙은행이 통화긴축을 본격화하면 신흥시장의 '약한 고리'를 휩쓴 '긴축발작'(taper tantrum)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