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버닝' 전종서 "서툴면 서툰 대로…바비인형처럼 존재하긴 싫어"
2018-06-06 01:01
영화는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전종서는 내레이터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는 해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낯설고도 궁금한 존재. 영화 속 해미와 영화 밖 전종서는 기묘하게도 맞물려있다. 속내를 들여다보거나 짐작할 수도 없는 해미와 꾸밈없이 분방한 전종서가 이질감 없이 작품 안팎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전종서의 일문일답이다
- 내내 베일에 싸여있어야 했다. 작품이나 저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더 (베일에 싸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나 싶다. 저 역시도 잘 몰랐던 것 같고. 작품 공개 후 리뷰를 보고, 인터뷰를 가지면서 제가 저를 더 알아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깨달은 점이 있나?
- 있다. 영화 속 제가 공감한 부분들이 있다.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더 구체적이어진다. 영화가 실제 우리의 삶과 제 삶의 일부와 닮은 게 많더라. 제가 어떤 형태로 살아가고 있고 사는 곳, 시대가 어떤 색깔인지. 공감하고 찾아보면 보이는 게 더 많다.
-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벤이 성소수자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 스티븐 연 오빠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그렇게 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정의할 수는 없다. 대화할 때 다 열어뒀다. 또 종수의 시선에서 본다면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의 개인적인 해석은 해미는 죽지 않았다. 그냥 사라진 거다. 다만 연기적으로 고민했던 건 ‘해미가 정말 벤에게 죽임을 당했을까?’였다. 해미 스스로 벤에게 제물이 되는 걸 선택한 게 아닐까? 두 가지 방향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스티븐 연 오빠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해미가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연기적으로 너무 어려운 작품을 데뷔작으로 둔 것 같다. 많은 부분을 열어둔다는 것이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 저는 오히려 답이 정해져 있고 공식이 있거나 정형화된 것들이 더 힘들다. 다행히 감독님의 스타일이나 배우들의 성향이 저와 잘 맞았다. 그들도 그쪽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분들인 것 같았다. 영화, 연기, 예술은 답이 없다. 범위가 넓지 않나. 제가 편하게 적응할 수 있는 현장은 분명 아니었으나 많은 분의 도움으로 배울 수 있었다.
어떤 것을?
- 처음엔 현장 용어도 잘 몰랐다. 슛이 무엇이고 컷은 무엇인지, 리허설은 어떻게 하는지. 심지어는 미술감독님이 뭘 하는 사람이고 조감독님은 무엇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헤어·메이크업을 도와주는 스태프들이 내 옷을 만지고 얼굴에 손을 대는 것을 인색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점차 그들도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작품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연기를 하고 있고 작품의 일부다.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거다. 이런 과정이 있다는 걸, 이전까지는 몰랐다. 영화를 보더라도 가장 핫한 건 배우니까. 그 배우가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길이 존재하는지 미처 몰랐다.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를 다닌 거로 아는데? 그곳에서도 ‘협업’은 존재하지 않나.
- 학교는 실망밖에 없었다. 입학하고 졸업하는 사람들 모두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런데 연극·영화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수업을 듣는다. 왜 알아야 하는지 그 부분이 이해가 되어야 수용이 되는데 그런 게 없었다. 막연하게 꿈만 꾸는 사람들과 모여 있으니 더 혼란스러웠다. 학교가 도움을 주는 것도 분명 있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무대를 만들고 공연하는 수업은 학점에 반영이 안 되고 이론 수업만 학점에 반영이 됐다. 공연하는 건 너무 즐거웠는데 그 외 수업들에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이론보다는 실기에 갈증이 있었나 보다.
- 그랬다. 연기를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다들 완성된 연기를 보여주고 따라 하라고 하더라. 이게 맞는 건가? 맛이 없었다. 그러던 중 결국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저 스스로를 정확하게 알고 탐색하는 작업을 가지라고 하더라. 그분 덕에 제가 어떤 아이인지 알게 됐다. 나의 결이나 감정 등등. 슬픈 감정에도 여러 결이 있지 않나. 너무 행복해서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 슬프기도 하고 그런 것. 저 역시도 저를 정의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이창동 감독님과 잘 맞았겠다.
- 감독님은 저를 감독으로서 대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한 여자아이를 바라봐주신다. 배우들도 그렇다. 그 덕에 어려울 수도 있었던 것들이 어렵지 않게 다가왔다. 저를 배려하는 거란 걸 안다. 거기에서 느끼는 고마움을 간과하고 싶지 않다. 계속 갚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으로 칸에 다녀왔다.
- 다들 칸에 가게 돼 좋지 않냐고 하는데 저는 거기가 제 자리가 아니란 걸 안다.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고 나는 따라가는 거다. 물론 작품 끝나고 흩어져 있다가 다시 함께하는 기분이 들어서 행복하다. 아쉽기도 하고. 또 이런 걸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함도 있다.
그게 차기작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지겠다.
- ‘버닝’이, 이창동 감독님이라서가 아니다. 이창동이라는 어른 혹은 이 배우들을 어디에서 만났더라도 저는 영향을 받았을 거다. 제가 느낀 건 어떤 게 올바름에 가까운 것인지다. 어떠한 자세, 어떻게 영화를 바라보느냐, 어떻게 연기를 대하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건지 인간적인 것에 대해 정립이 됐다.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 거고 제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거다.
뜨거운 데뷔였다. 작품으로도 외적으로도 관심이 뜨거웠다.
- 좋은 말이든 좋지 않은 말이든. 또한 좋은 시선이든 아니든 그게 정말 나를 향한 걸까 싶다. 우리 영화로 빗댄다면 분노를 표출할 곳이 필요한 거다. 분노를, 사랑을, 감정을 표현할 대상이. 제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다. 현실이 가짜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온다. 쏟아지는 관심의 정도는 모르겠다. 저는 (관심을) 그대로 수용하지도 못한다. 그게(관심이) 제가 연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아니다. 욕심을 내거나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제가 이상해질 거 같다. 갈피를 못 잡을 것 같고. 저는 어떤 문제, 싸움이 있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본다. 문제를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 크게 보면 뜨거울 수밖에 없다.
마냥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 없는 일들도 있지 않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조율해야 하는 일들도 생길 텐데.
- 저라는 애가 백지상태라면 이제 선 하나 그린 거다. 종이 하나가 펼쳐진 거다. 어떤 그림을 그릴 건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말해줄 거라고 본다. 그것들이 레이어드(Layered)가 되고 아카이브(Archive)가 되었을 때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거다. 지금 당장 어떤 모습이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있으니 저의 이만큼이 전부라고 판단되는 것 같다. 여유를 챙기는 거다. 먼 곳을 넓은 곳을 깊게 보려고 하고. ‘조율’해야 하는 게 어떤 건지 저도 안다.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당장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유연성이 생기려면 경험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필요한 거니까. 서툴면 서툰 대로, 매너를 지키되 항상 웃고 있는 바비 인형처럼 존재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