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평양의 트럼프 타워

2018-05-24 08:57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남북 관계가 해빙 무드를 타고 있는 가운데 다음 달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북·미 간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정세 변화는 가히 어지러울 정도로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관련해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의 각종 시나리오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평양 대동강변의 트럼프 타워 건설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진행하고 미국이 체제보장을 해준다면 평양에 트럼프 타워가 들어서고 맥도날드와 코카콜라가 판매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런 생각이 전혀 황당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최근 들어 여러 정부, 기관에서 비슷한 전망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미관계가 호전되면 미국 시민의 세금을 쓰지 않고도 민간 기업의 투자를 통해서 북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를 두고 북한판 마셜 플랜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마셜 플랜이란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정부가 서유럽 경제 재건을 위해 5년 동안 120억 달러를 들여 서유럽 16개국에 제공한 원조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는 정부 원조 공여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 투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서유럽 경제가 재건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한국산업은행은 한국정부, 주변국 정부, 그리고 국제개발기구가 협동으로 북한개발은행을 설립해서 북한 경제 개발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경제 개발에 최소 100조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어느 한 정부나 기구가 이를 전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아직 정치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북한에서 민간 기업이 투자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위험을 분산하는 이러한 공동 공적 투자 전략은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아시아개발은행(Asia Development Bank) 등 국제개발기구의 역할이 강조된다.

한국 정부가 국제기구와 손잡고 북한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 민감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 정부가 대북 관계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는 꼭 필요해 보인다. 정권이 바뀌면 대북정책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기구나 국제사회와 손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북한 정부의 거부감을 줄이는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고 대내외에 대북 사업의 정당성 및 신뢰성을 제고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사업의 경험을 보아도 이는 자명해 보인다.

국제기구 중에서도 특히 세계은행의 역할은 크게 기대할 만하다. 이는 김동연 부총리도 밝힌 바 있는데 한국 경제 개발에 큰 역할을 했던 세계은행이 북한의 경제 개발을 한국 정부와 합동으로 추진한다면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을 통해 지역 및 세계 경제 주도권 잡기를 시도하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세계은행의 역할은 중요하다. 사실 벌써 자원, 에너지 등 북한 경제의 많은 부분이 중국의 영향권에 종속되어 가는 경향이 있어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현실이다.

세계은행과 한국의 관계는 아주 특별하다. 한국 경제 발전 초기에 주요 인프라 및 기간 산업 투자는 세계은행이 주도해 왔고 그 결과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1995년 한국 정부가 세계은행 차관에서 공식적으로 졸업했고 그 이후에는 수여국이 아닌 공여국으로 개발도상국 발전에 기여해 왔다. 현재 한국은 세계은행의 1.5%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고 2013년에는 송도에 한국사무소를 설치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한국에서 행한 세계은행의 역할이 전 세계가 본받을 모범 사례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개발 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2011년 한국녹색성장신탁기금(Korea Green Growth Trust Fund)을 설립하였고 현재 세계은행은 이 기금을 통해 전 세계 60여개 국가에서 120여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북한이 필요한 모델은 이러한 인프라 및 기간 산업 투자를 통한 경제 발전일 것이다. 과거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 및 국제기구의 원조를 수입대체산업 및 사회서비스에 집중 투자하여 실패한 사례를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보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개발 계획에 따라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이룬 사례이다. 평양에 트럼프 타워를 세우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지점이 생기는 것도 폐쇄된 북한 사회를 개방한다는 차원에서는 좋은 일이다. 그만큼 상징성도 크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는 민간부문에서 소규모로 이뤄지는데 그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사회 및 국제기구가 한국정부와 손잡고 장기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향후 가능할지도 모를 남북 경제 통합이 순탄해질 것이고 통일 비용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