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용 칼럼] 블록체인과 거래혁명

2018-05-08 10:22

[박수용 서강대학교 교수]



블록체인을 여러 가지 기술적인 용어들로 설명할 수 있지만,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필자는 `신뢰를 만들어 주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제까지 인류는 사람들 간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화된 인증기관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 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은행이라 할 수 있다. 은행이라는 중앙화된 기관을 통해 우리는 서로 간의 거래를 하고 이런 거래 내용은 은행의 중앙화된 장부에 꼼꼼히 기록돼 위변조의 가능성을 기술적, 업무적인 관리로 철저하게 배제한다. 사람들은 그 장부를 근거로 각자의 소유를 확인하고 상호 간의 거래를 해왔다. 그러나 `블록체인`이란 기술은 이러한 중앙화되고 중립적인 제3의 기관 없이 상호 간의 직접적인 신뢰를 만들어주는 기술인 것이다.

세부적인 기술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가 만들어졌고, 지난 10년간 비트코인을 주관하는 은행이나 기관 없이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다. 물론 최근의 비트코인의 투기라든지 가치의 유동성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는 있다. 하지만 이제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그동안 국가만이 발행 할 수 있는 화폐를 개인이나 기업이 다양한 용도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1300여종의 코인이 존재한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다. 물론 이로 인한 혼란과 정부의 적절한 제도 확립 및 개선의 필요성 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필자는 이러한 다양한 코인들이 새로운 산업의 생태계 조성, 사회의 변화까지도 가져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 측면에서 푸드코인(FoodCoin)은 농부, 농산물 가공업자, 운송업자 등과 같은 식품에 관계되는 사람들이 같은 생태계 안에서 푸트코인을 주고받으며 직거래를 한다. 또 스마트계약이라는 기능을 활용해 중간 중개인 없이 상호 간에 계약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식품생태계의 화폐이다. 파일코인(Filecoin)은 인터넷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컴퓨터에 비어있는 저장정소를 임시로 대여해 주며 빌려 쓰기도 하는 스토리지 생태계에서 쓰이는 코인이다. 푸드코인은 지난해 12월 말 가상화폐공개(ICO)를 통해 2000만 달러(약 215억8000만원)를 투자받았고, 파일코인은 작년 12월 중순 2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최근 흥미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는 바로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기술이 융합한 `크립토AI`라는 분야다. AI코인(AIcoin)을 기반으로 AI 분야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AI코인은 복잡하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을 여러 개의 AI 프로그램들이 나눠 문제를 풀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코인을 교환한다. 이러한 생태계에서는 IBM의 왓슨 같은 거대한 인공지능 컴퓨터가 아닌 여러 대의 소규모 AI 컴퓨터들이 함께 문제를 풀고 이에 대해 보상을 함으로 집단지능을 이용한 문제 해결이 가능해 진다.

사회변화의 예로서 최근 일부 학자들은 페이스북이 한 달 사용자 기준 전 세계 20억명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소식을 전하고, 사진을 올리는 등 지식과 정보의 노동을 하고 있다. 그 노동의 결실은 고스란히 페이스북이 가져가고 있으니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은 20억명이나 되는 사용자들의 작은 노동의 행위들에 대해 어떻게 지불하느냐의 이슈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화폐로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스팀잇 이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좋은 글을 올리는 사람들과 이를 보고 공감해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에게 스팀코인으로 적절한 보상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무분별한 글을 올리거나 의미 없는 댓글을 올리는 행위 등을 배제 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물론 아직 초기 단계이고, 여러 개의 보완 이슈들이 있기는 하지만 가히 SNS의 혁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도 든다.

우리 사회를 둘러 보면 수많은 사람이 노력과 행위들로 인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다시 돌려주지 않는 많은 사업의 형태를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플랫폼 비즈니스라고 하는 대부분의 사업이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페이스북, 네이버 등과 같은 SNS 사업은 물론이고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응원을 하고 글을 올리고 함성을 지르지만, 이들의 열정과 노력은 그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평가되고 그들의 열성에 대한 보상은 소속사가 모두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가치로 전환되고 이 가치가 보상될 수 있다면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선한 행위를 함으로도 일부 소득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이처럼 블록체인이라 기술은 산업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사회의 모습들도 바꾸는 미래의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모든 블록체인 기술이 코인과 연관돼 구현 될 필요는 없다. 해외 각국 정부에서는 이미 블록체인을 도입해 신뢰받는 정부, 새로운 형태의 정부 시스템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 투표, 의료 정보 등 정부의 전산, 전자 행정 시스템의 분야를 비롯해 공공부문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호주나 에스토니아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전자 투표 방식을 개발하고 있으며, 미국은 의료정보 관리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추진하는 것을 연구 중이다. 중국은 항저우(杭州)에 스마트 신도시의 인프라로서 블록체인을 구축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추세 때문인가 지난 다보스포럼에서는 2027년에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가 이 블록체인에 저장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얼마 전 필자는 두바이 블록체인 서밋을 참석했다. 두바이 정부는 2020년까지 세계 최고의 블록체인 선도 도시를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2000년대 초 우리는 인터넷 기반의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켜 그야말로 인터넷 강국의 위상을 구축했다. 그러나 닷컴 버블 이후 우리의 정보기술(IT)산업은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나 도입에 주저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 추월당해 다소 주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이제는 중국보다도 뒤지고 있다. 아니 이미 뒤졌다고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재기 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2의 인터넷, 가치의 인터넷이라는 별칭을 가진 블록체인 기술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예전의 IT 강국의 위상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정부, 산업체, 학계는 좀 더 일심동체가 되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