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민의 스포츠화(話)] ‘주춧돌 든 헐크’ 이만수 “라오스 야구장 건설, 내 인생 마지막 꿈”
2018-05-02 06:32
네 번째 꿈 향해 달려가는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 자랑을 하는 것처럼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최근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은 한참동안 라오스 야구 대표팀 선수들 이야기를 했다.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 라오J브라더스의 구단주인 이만수는 “야구 유니폼을 벗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 가장 먼저 배운 것이 거절이었다. 힘들 때도 많지만 라오스 선수들이 선생님이라는 뜻인 ‘아짱’하고 안길 때면 모든 것을 잊게 된다”라고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내륙부에 있는 라오스와 이만수 이사장의 인연은 뜻밖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됐다. 이만수 이사장은 SK 와이번스 감독이었던 2013년 일면식 없던 라오스 교민 제인내 씨로부터 “라오스에 재능 기부를 하려 와주십시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일주일 중 6일을 녹색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보내는 직업이 야구 감독이다. “시간 되면 한 번 가겠습니다”라는 사실상 거절의 말을 제인내 씨는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다. 이후 일주일에 2~3번씩 전화가 왔다. 이만수의 마음도 움직였다. 우연은 인연이 됐다.
일단 야구를 시작하려면 장비가 필요했다. 2014년 5월 이만수 당시 SK 감독은 1000만원 상당의 야구 장비와 함께 프로 선수들이 사용하지 않는 유니폼, 모자, 스파이크 등을 모두 모아 라오스에 보냈다. 한 달 후 SK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들의 사진이 도착했다. 이만수 이사장은 “SK 3군 같았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야구를 가르치려면 우선 지도자가 필요했다. 이만수 이사장은 “권영진 감독이 2016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박종철 감독이 2017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의 도움으로 라오스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지도자가 4명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박종철 감독은 오는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라오스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다.
라오스에 야구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정부 관계자들의 도움도 필요했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던 라오스 정부 관계자들도 매년 네 차례 라오스에 와 야구를 알린 이만수 이사장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이만수 이사장은 2016년 10월7일 라오스 총리 훈장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부탁할 것 없냐?”는 장관들의 질문에 이 이사장은 “라오스에 야구장이 없다. 무상으로 땅을 빌려 달라”라고 부탁했다. 이에 라오스 정부는 수도 비엔티안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2만1000평의 땅을 빌려 주기로 결정했다.
이만수 이사장은 지금까지 10년을 내다 본 꿈을 세 번 꿨다. 중학교 1학년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 삼성 라이온즈 현역 유니폼을 벗은 후 미국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다.
1958년생인 이만수 이사장은 이제 마지막 꿈을 꾼다. 지난 꿈들보다 두 배 더 큰 20년을 내다 본 꿈이다. 이만수 이사장은 “라오스 야구장에서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과 함께 국제 대회를 여는 것이 인생 마지막 꿈이다. 먼 미래의 일일 수 있다. 나는 후배들이 마음껏 건널 수 있는 주춧돌을 놓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